‘흰, 신’
2020-08-11 (화)
정우영
내가 신을 신고 댕기는 줄 알았는디이,
어느 날 보니께 신이 나를 지고 다니는 거시여.
쉬는 참에 벗었는디 고것들 어깨에 핏물이 들었더라고.
평생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이.
여린 몸땡이로 신통히도 젼뎠구나 싶더랑게.
그짝부텀여, 신고 벗고 할 적마다 신께 빌었제.
고맙구만이라, 오늘도 편허니 잘 살았십니다.
동네 초입에서 태워지는 흰 신,
할매 태우고 훌훌 승천 중이시다.
할매, 평생 머리 위에 신 있고, 발밑에 신이 있었으니 신과 신 사이 다녀가셨네요. 두 손 모아 비난수하던 머리 위 신은 당신이 간절히 가고 싶은 길을 이끌었고, 발밑 신은 당신이 가야만 했던 길로 당신을 메고 오셨네요. 당신이 잠시 구름 너머 신을 잊고 가시밭을 헤맬 때에도 발밑 신은 핏물 든 채 당신을 따라가셨네요. 신과 신 사이, 한평생 고달퍼도 얼마나 아늑하셨수. 마침내 가장 높은 신과 가장 낮은 신이 당신을 싣고 흰빛으로 두둥실 떠나는군요!
반칠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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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