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체 게바라,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시가와 럼, 헤밍웨이…
한때 ‘카리브 해의 진주’라 불리던 섬나라, 낭만의 눈으로 보면 ‘시간이 멈춘 곳’이고 아날로그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지이며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메리카대륙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1990년대 초 소련의 원조가 끊어지고 미국의 경제봉쇄가 시작된 후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여왔다. 현재 쿠바의 주력산업은 관광업이다.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나라가 자본주의 여행자들 덕분에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다.
쿠바는 많은 것이 신기한 나라다. 생활수준은 낮아도 실업률은 1~3%에 지나지 않는다. 초중고대학까지 전 교육이 무상이며, 문자해독률(99.8%)은 세계 1위다.(한국이 98.3%로 2위) 또 중남미 최고의 스포츠 강국으로 올림픽 금메달 수(67개)가 북남미를 통틀어 미국 다음이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경이, ‘의료강국’ 쿠바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인구 1,100만명인 쿠바는 7월20일 현재 코비드-19 누적 확진자 2,446명, 사망자 87명이다. 인구대비 계산하면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의 60분의 1 수준이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동안 테크놀로지도 없고, 의료물자는 만성적으로 부족하며, 음압병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 작고 가난한 나라가 코로나방역에서 최고 선방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쿠바는 ‘가난한 의료선진국’이다. 의료비가 전국민 무료이고, 의사 수는 1천명당 8.4명으로 세계 1위다. 한국 2.4명, 미국 2.6명, 독일 4.1명에 비하면 엄청난 의사부국이다. 팬데믹 초기에 쿠바 정부가 세계 27개국에 3,337명의 의료진을 파견하며 ‘코로나 외교’를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 풍부한 의사인력 때문이다.
아바나 의과대학 재학생으로 최근 한국 언론에 쿠바의료제도에 관한 글을 기고한 김해완씨는 쿠바의 방역 성공요인으로 전국민 밀착 의료제도와 ‘뻬스끼사’라 불리는 의대생들의 문진활동을 꼽는다.
쿠바에는 콘술토리오(Consultorio)라는 가족주치의 클리닉이 동네마다 위치해있다. 주치의는 어느 집에서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고 평균 500가정을 상시적으로 살핀다. 콘술토리오 위에는 동네 종합병원 폴리클리니코(Policlinico)가 있다. 각 폴리클리니코는 약 20개의 콘술토리오를 관리하며 전문의 소견이 필요한 환자를 받는다. 여기서도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오스피탈(Hospital)이라는 대형병원으로 보내진다. 이 시스템을 통해 전체 환자의 80%는 콘술토리오와 폴리클리니코의 일차 진료에서 조기 치료된다.
뻬스끼사(pesquisa)는 전염병이 발생하면 시작되는 문진활동이다. 환자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모든 집은 매일 의료인의 방문을 받는다. 전염병의 기세가 꺾일 때까지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수만명의 의대생들이다. 의대는 곧바로 학사일정을 멈추고, 학생들은 책과 펜을 놓고 거리로 나간다. ‘인간 앱’이 된 이들은 집집이 방문하여 한국의 자가진단 앱과 동일한 질문(오늘은 기분이 어떤가요? 열이 있나요? 기침이 있나요? 등등)을 수작업으로 반복한다. 오전에 수집된 정보는 콘술토리오에 일차 접수되고 폴리클리니코로 넘어가면서 의심증상을 보이는 가정집을 추려낸다.
오후에는 전문 의료진이 문제의 집들을 재방문하여 진단키트로 검사하고 코로나 양성반응이 확인되면 그 블록 전체의 주민들이 다 함께 시설로 이동한다. 이것이 쿠바 의료진이 3월부터 현재까지 반복하고 있는 일상이다. 이번 팬데믹 동안 전 의료진은 휴일도 없이 동네를 ‘스캔’하면서 확진자 발생 즉시 격리시킴으로써 감염확산을 막았다.
뻬스끼사는 감염 진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직접 오가는 정서와 관심은 주민들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각 가정의 상태를 파악하게 해준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한 독거노인들은 하루 한 번 의대생이 찾아와 잠깐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이 예방되고, 낙상하거나 다른 병이 생겼을 때 빨리 치료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100% 아날로그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는 쿠바뿐이다. 어쩌면 공산국가에서만 가능한 시나리오이고, 모든 나라가 따라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쿠바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과학과 의술이 발전한 선진국에서만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번 코로나 위기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울러 전염병 퇴치는 의료체계의 수준에 앞서 국가의 방역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첨단 테크놀러지를 갖춘 세계 최강국도 지도자 한사람의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지,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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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