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All lives matter

2020-07-06 (월) 12:00:00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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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요즘 이 문구는 뉴스나 소셜미디어 어디서든 볼수 있다. 얼마 전 애틀란타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참히 무릎으로 8분여간 밟고 있다 죽인 사건이 발단이 되어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의 시스템에 분노하는 이들이 벌이는 시위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all men are created equal”)는 이념을 바탕으로 가장 근본적인 민주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에서 왜 ‘all lives’가 아닌 그 앞에 ‘black’이 붙어야하는 걸까.

인종차별이란 어느 나라에서든 존재한다. 나와 다른 이들에게 경계심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따라서 자기나라에 자민족이 대다수이고 타인종 및 타민족으로부터 이민을 수용하기 시작한 나라들은 인종차별에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 이민을 택한 이들은 자의로 온 것이고, 해당 나라에서도 그들의 이민신청을 받아들였다면 그 민족을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유럽인들이 이주해와 이민으로 이룩된 국가인 미국은 틀리다. 또한 자의로 왔다기보다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은 250여년간 노예생활을 하다 남북전쟁을 통해 해방되었지만 이들의 사회적 ‘계급’은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다른 유색인종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노예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고 핍박과 힘겨운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투표권의 행사, 직장 내 차별같은 사회의 통상적인 불평등이 아닌, 경찰에게 억울하게 당하고도 대응할 수 없는 부당함과 심한 차별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건만 해도 1991년 LA 폭동으로 이끌었던 로드니 킹 사건, 1999년 뉴욕 경찰들로부터 41발의 총을 맞고 죽은 아마두 디알로,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 등 수두룩하다. 미국사회는 희한하게도 마이클 조던, 비욘세 같이 성공한 유명한 운동선수나 가수들은 특출난 흑인들이며 흑인의 카테고리의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는듯하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시민 대 오제이 심슨’(The People vs. O.J. Simpson)이라는 시리즈를 보았다. 1994년 엄청 유명한 흑인 미식축구선수 오제이 심슨은 부인을 처참히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나 로드니 킹 사건과 관련한 LA 경찰들의 야만성과 이때에 발맞춤한 시대적인 인종차별이 드러나며 배심원들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맞본 검사는 심슨을 변호하고 승리한 의기양양한 흑인 변호사에게 한마디 한다.

“오제이 심슨이 무죄판결 받았다고 해서 당신이 흑인 시민권리에 대해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을 만든 게 결코 아니에요. 이 나라의 백인 경찰들은 흑인들을 계속 체포하고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거고 이들을 죽일 거에요. 당신은 흑인들을 위해 바꾼 게 하나도 없어요. 물론 당신의 친한 그 부유한 브렌트우드에 사는 친구(O.J Simpson) 한명 빼놓고는요.”

나는 이 구절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 이는 이미 26년 전의 일이지만 무슨 데자뷔처럼 현재까지 변한 것 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어퍼머티브 액션(소수계우대정책)이며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 관련 수업 및 세미나가 열리며, 인종의 부당한 차별에 대한 교육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교육받은 흑인의 수가 늘어나고, 성공한 흑인이 늘어나고,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한 미국사회는 2020년 지금까지도 1990년대 겪었던 일이 대물림되고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계속된다.

나는 유년 시절과 대학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며 미국 교육 시스템과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유분방함이 주는 창의력의 예찬론자이지만 감히 요즘 미국의 추세를 보면 과연 미국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민주주의의 본연과 본질을 제시하고 있는지, 또 인종차별과 자본화의 극대화의 영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씁쓸함을 털어버릴 수가 없다.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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