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로 시작되는 예수의 ‘산상수훈’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설교 중 하나다. 특히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것이고 애통한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는 예수의 역설법 설교는 당시 대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이 되었다. 경제적 착취 구조의 희생자들이었던 대중은 예수의 설교를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과 함께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이끄는 메시아적 메시지로 읽었다.
하지만 정치적 혁명과는 거리가 먼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또 다른 역설로 예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남겼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제체의 종주국 격인 미국의 경제가 코로나19 역설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코로나19의 역설 중 가장 큰 것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맥없이 스러지며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손’도 코로나19에는 힘 한번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간과했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자본주의 체제를 받들어주는 토대였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대피령으로 발생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단절에서 기인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단절은 실업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개인의 이익 추구를 앞세웠던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손쉬운 해고로 인한 실업 문제에 봉착할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9주간 코로나19 사태로 약 3,86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 쓰나미’다.
실직자들 사이에서도 코로나19 역설이 존재한다. 각종 경기부양책이 실시되면서 실업수당이 급여보다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실업수당 수준은 주별, 실업자 소득별로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주당 371.88달러(2019년 말 기준)다. 여기에 연방보조금 600달러를 더 받게 된 것. 직장 복귀를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원인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생존을 위해 각자 이익 추구의 극단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역설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이익 추구와 사적 재산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만큼 경제 공동체의 공적 이익과 가치 역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동의 가치를 오로지 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저급한 가치 판단 기준에서 노동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구현한다는 사람 중심의 판단 기준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가 남긴 역설에서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는 경제 공동체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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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