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사태 키우고 측근은 충성파로 채워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 대상은 피아 구분이 없다.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비난하는 세력은 모두 적으로 돌린다. 대통령 선배이자 같은 공화당 소속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부시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협에 맞서 당파적 분열을 버리자”고 호소하자, 그를 향해 “내 탄핵 때 어디 있었느냐”며 잔뜩 비아냥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위기 대응 방식만큼은 빼닮은 것 같다. 물론 잘못된 대처다. 트럼프처럼 재임 시절 9·11 테러란 대형 안보참사를 겪은 부시도 전문가들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아 예견된 재앙을 초래했다는 게 외교전문지 포린폴린시(FP)의 진단이다.
FP는 19일 “트럼프는 부시 행정부의 20년 전 각본에 따라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격은 달라도 국가위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거의 같다는 얘기다. 트럼프와 부시의 확실한 공통점은 전문가와 정보당국의 사전 경고를 무시하다 대응 실패를 불렀다는 것이다.
9·11 테러 때도 5년 전부터 “이슬람 무장단체의 대량살상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팎의 조언이 쏟아졌다. 심지어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선 전담 대응팀까지 꾸려졌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이를 긴급한 현안으로 다루지 않다가 테러 발생 직전인 2001년 9월 4일에야 관련 국가안보회의(NSC)를 처음 소집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정보당국이 전한 바이러스 확산 신호를 무시하고, 앤소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 같은 보건 전문가들을 공개 조롱해온 트럼프의 ‘마이웨이’ 행보가 20년 전과 겹쳐진다.
경험과 능력이 아닌 충성파만 곁에 두는 인사 스타일도 위기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부시는 테러 위험성을 꾸준히 직언한 리처드 클라크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을 좌천시켜 결국 행정부를 떠나게 했다. 트럼프도 자신이 극찬한 말라리아 치료제에 의문을 제기한 백신 개발 책임자 릭 브라이트 보건복지부 국장을 경질하는 등 눈 밖에 난 관료들을 줄줄이 인사 조치했다.
외부 이슈를 끌어 들여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전략 역시 똑같다. 부시는 9·11 테러 발생 직후 사담 후세인 정권의 알카에다 연관설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위험을 들어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 트럼프가 코로나19 사태를 고리로 중국 때리기에 골몰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