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사 - 장녀 이경원씨

2020-03-2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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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47세 한국에서 한참 잘 나가던 때에 형제를 따라, 그리고 우리 4남매의 미래를 위해 미국에 오시면서 넓은 땅, 기회의 땅 미국에서 너희의 꿈을 펼쳐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황금시절을 희생하시고 미국에 오셨습니다.

은퇴 후에도 잠시 쉬지도 않으시고 4남매집 돌아다니며 밭 가꾸고, 가구 고치시고, 밤에는 용돈을 버신다면서 청소를 다니시던 아버지 뒷 모습에는 어쩌면 희생만 하시고, 당신의 인생을 가꾸지 못하신 쓸쓸함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어서 죄송스런 마음에 눈물도 흘렸답니다.

80세에 한국에 있는 제 집에 오셔서 친구분들 만나시며 인생을 마무리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서 간암을 선고 받으시고 충격이 정말 크셨을 거에요. 그런데, 아버지는 전혀 흔들리는 모습 없이 침착하게 원하시는 친구분들 만나며, 사랑하는 모교 동창들과 만나면서 밤늦게 원고를 정리하시는 모습에 저는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죽기 전에 모교를 위해 잡지(잡지이름 -성원: 거룩한 정원)를 창간하시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가난했던 아버지를 위해 교장 선생님이신 바오로 신부가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하셨다고 그 은혜를 꼭 갚아야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세상과 이웃들에 항상 이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면서 홍익인간을 항상 방문위에 걸어놓으시고 바른 삶만이 스스로의 삶을 윤택하고 평화롭게 만든다면서 정직을 늘 강조하시던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학교때, 오빠가 거짓을 말하고는 아버지에게 호되게 회초리를 맞은 기억이 옆에서 보던 내게도 엄청 충격이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이 소중한 것을 우리의 2세에게 말할 때면 우리는 자랑스러움에 마음이 뿌듯해지고는 합니다.

마침내 모교를 위해 장학회를 만들고, 창간호 ‘성원’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을 때는 정말 잔치 분위기였죠. 아버지는 그 때 말기암으로 아프신 모습이 역력하셨는데 훌륭히 해내셨어요.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짐을 정리하여 미국의 가족으로 돌아가시는 비행기에 오르실 때,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아버지는 미국에 있는 엄마와 모든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던 것 같군요. 온 가족이 모여 아버지의 85세 생신을 축하하고 며칠 뒤 평화롭게 떠나셨어요. 하나님곁에선 아프지 않으실 거에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지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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