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989년 체제’ 마감의 변곡점인가

2019-11-25 (월) 12:00:00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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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궤멸사태로 몰렸다. 시위대 ‘최후 요새’로 불린 홍콩 이공대 마저 경찰에 장악된 것이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중국공산당 정권의 승리는 필연으로 보인다.” 중국의 반체제인사 아이웨이웨이가 비통한 목소리로 전하는 홍콩 현장의 분위기다.

홍콩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70년대의 벨파스트, 50년대의 알제와 흡사하지 않을까. “오늘날 홍콩에서 목도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에의 믿음이 확고한 젊은 세대다. 30년 전 톈안먼 세대같이 이 세대의 민주화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웨이웨이의 말이다. 공산주의 폭정에 대한 저항은 세대를 이어가며 계속될 수도 있다는 거다.

관련해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보다 긴 시간, 역사라는 관점에서 2019년 홍콩의 시위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톈안먼 사태 이후 30년, 그 한 시대의 종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지의 진단이다. 옥스퍼드대학의 티모시 가튼 애시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폴란드, 헝가리 등 중부유럽의 허약한 민주주의 체제들의 출현이 1989년의 산물인 것 같이 레닌 자본주의의 중국의 부상도 1989년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989년 체제’는 끝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으로 홍콩사태를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 지구촌의 양쪽 끝에서 공산체제와 관련해 일어난 두 가지 대사건, 베를린장벽 붕괴와 톈안먼학살. 이중 어느 사태가 더 긴 역사적 파장을 몰고 왔나. 톈안먼사태가 아닐까 하는 것이 니올 퍼거슨 같은 일부 역사가들의 뒤늦은 자기 성찰성의 진단이다.

1989년 이후 최대의 세계사적 사건은 소련공산제국 붕괴도, 유럽연합(EU)의 확대도 아니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것이 퍼거슨의 말이다. 베를린장벽 붕괴에 따른 유포리어에 도취돼 서방은 톈안먼에서 드러난 공산주의의 그 잔인한 민낯을 직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공산당 생존’이 지니는 중요성을 과소평가 했었다는 거다.

소련공산제국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정권은 건재하다. 단지 생존차원을 넘어 중국시대를 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강박증세에 가까울 정도로 소련제국 몰락과정을 학습하고 복기해보고 또 복기해왔다. 이와 동시에 고안해낸 것이 레닌 자본주의다.

그 국가자본주의로 무장한 중국은 비약적 발전을 이룩해왔다. 그러기를 30년. 그 ‘1989년 체제’는 그러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불만에 찬 노동자들의 시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집권 엘리트들은 떼를 지어 돈과 자녀들을 해외로 빼돌린다. 부정적 경제뉴스 보도는 불법으로 엄단된다. 소련식 붕괴를 경고하는 시진핑의 내부연설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국내치안 예산은 배로 증가했다. 증시붕괴, 시위사태 확산 등 불온한 사태만 발생하면 외국의 불순세력에 그 책임을 돌린다.”

포린 어페어지가 전하는 집권 7년을 맞은 시진핑 치하의 중국의 내부 모습이다. 뭔가에 쫓기고 있다고 할까. 문제를 더 심각히 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경제적 장래는 암울하기만 하다는 사실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최저를 마크했다. 베이징은 6%로 발표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0%에 가깝다는 것. 과거 중국경제를 도약시켰던 자산들이 부담이 되어가면서(한 예가 3억에 가까워 가는 노년층 인구로 이들은 한때 중국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다.) 중국경제는 빈사상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 내부의 진통을 억누르고 또 억누른다. 사상 최악의 반체제인사와 종교 탄압 등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부에서부터 흔들림이 전해져 온다. 시위와 저항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100만 이상이 불법 감금된 신장성 위구르 자치구 사태. 수개월 째 지속되어온 홍콩항쟁에서 보듯이.

중국대륙의 변방에서 일고 있는 소요사태. 이는 뭔가 과거로부터의 메아리로 들려온다. “소련제국의 파워는 주변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이다. 헝가리로, 동독 라이프치히로 연쇄반응이 이어지다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결국 소련제국의 심장부가….” 퍼거슨의 지적이다.

홍콩이 크게 동요한다. 신장성이 흔들린다. 타이완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베이징보다도 주변부의 동향을 더 주시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 있다는 거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의해 시위는 일단 한풀 꺾였다. 그러나 자유에의 염원은 여전히 살아 있다. 홍콩항쟁사태는 그런 면에서 ‘1989년 체제’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아주 중요한 변곡점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던져진다. 경제적 장래가 암담한 중국, 그 힘이 한풀 꺾인 중국은 앞으로 어떤 행태를 보일까. 한(漢)지상주의의 대대적 고취와 함께 국내 탄압은 더 가중된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완력외교’로 일관해오던 베이징은 이웃에 대해 더 공격적이고 고압적인 대외정책을 펼칠 것이다. 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항상 불안과 공포에 쫓기는 것 같은 베이징의 지도자들. 그들이 초조한 눈으로 멀리 응시하는 곳은 어디일까. 남중국해, 동중국해, 한반도, 그리고 타이완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중국의 국내정치 사정에 따라 이중 어느 곳에서든지 베이징이 불장난을 할 개연성은 더 높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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