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키비아데스 이야기

2019-10-29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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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명문 알크메니드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클레이니아스는 나라에 전함 한 대를 헌납할 정도로 부자였고 스스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

아버지 사후 그를 기른 사람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그의 삼촌인 페리클레스였다. 그는 명문가 부잣집 출신에다가 재주가 많고 총명하며 언변이 뛰어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수제자로 삼을 정도였다. 거기다 외모마저 출중해 당대 최고의 조각가 피디아스가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 모델로 그를 썼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테네를 이끌 미래의 지도자가 될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본인도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기원전 410년대 아테네는 숙적 스파르타와의 오랜 전쟁을 중단하고 휴전 중이었다. 그는 스파르타와의 공존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인근 아르고스를 부추겨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중립국 멜로스를 침공한다. 침공에 앞서 항복을 권하는 아테네 사신과 멜로스인과의 설전은 ‘멜로스 인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돼 있다.


여기서 멜로스 인들은 우리는 평화를 바랄 뿐이며 전쟁이 일어나면 신들이 죄 없는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주장하지만 아테네 사신은 “강한 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약한 자는 당해야 할 일을 당하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며 우리는 그 원리를 따르는 것일 뿐이라 반박한다. 전쟁은 아테네의 승리로 끝나고 멜로스 남자는 모두 죽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전락한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스파르타의 동맹국인 시칠리아를 쳐야한다고 시민들을 설득, 원정대를 꾸며 떠난다. 그러나 원정 도중 신성 모독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자 압송되는 도중 간수를 매수해 적국인 스파르타로 도주, 적을 돕는다. 그러다 거기서도 밀려나자 이번에는 페르샤로 도망갔다 다시 아테네로 귀환해 정적을 물리치고 권력을 잡지만 실각하며 도주하다 살해된다.

한편 그가 주창하고 이끌었던 시칠리아 원정은 전함 200척과 6만명의 병사를 잃는 참패로 끝나고 그와 함께 그리스의 맹주였던 아테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한때 촉망받던 정치적 스타였던 알키비아데스가 아테네 몰락의 선봉이 됐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알키비아데스가 활동했던 아테네의 기원전 5세기 후반은 인류 역사상 다시없을 문화의 황금기였다. 서양 건축물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파르테논, 그리고 소크라테스, 아에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등이 모두 이때 나왔다.

무엇이 이런 위대한 시대의 종말을 가져온 것일까. 이 시대를 대표한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에서 오만(휘브리스)을 그 주 원인으로 꼽았다. 스파르타와의 전쟁 시작 직후 쓰여진 이 작품에서 가장 현명하며 위대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무지한 채 주위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비밀을 파헤치다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유한하며 모든 인간은 신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테네의 영광은 사실은 동맹국들의 피땀을 수탈해 이뤄진 것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된 아테네는 회원국의 조공 상납을 강요했고 그 돈으로 파르테논을 지었지만 동맹국들의 분노와 원성을 샀다. 이것이 자기 몰락의 씨가 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돈 많은 명문가 출신으로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인물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아내는 구속됐고 동생은 기소됐으며 본인도 언제 기소될 지 모른다. 조국이 서울법대에 들어갈 때 법대 정원은 300명이었고 고교 졸업생 수는 60만이었다. 탑 1%도 아니고 0.1%도 아니고 0.05%에 드는 실력이라야 갈 수 있는 학교를 18살도 아니고 16살에 들어갔다.

조국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도대체 조윤선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우리는 이 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라는 그의 말에는 오만이 배어 있다.

정의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큰 가치에 자비라는 것도 있다.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면 온전할 수 있는 인간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똑똑하거나, 돈이 많거나,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키비아데스와 조국을 생각하며 조금 겸손해져야 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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