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헌법에는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가 가끔 등장한다. ‘사익’을 뜻하는 ‘emolument’도 그 중 하나다. 연방 헌법 1조 9항은 공직자가 외국으로부터 선물이나 사익, 공직이나 작위를 받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내년 G7 정상회담을 플로리다에 있는 자기 리조트에서 열려던 계획을 이틀만에 철회했다. 트럼프는 이런 입장변경을 언론과 민주당 일각의 극렬한 반대 탓으로 돌리면서 회담 유치로 인해 얻은 이익은 연방정부에 헌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트럼프로서는 이례적인 퇴각이다.
이에 앞서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은 12개의 후보지 중 10개를 방문한 후 트럼프의 도럴 골프 리조트가 선정됐으며 그 이유는 “이 리조트를 지은 사람은 처음부터 이런 행사를 염두에 둔 것 같았다”는 보좌관 말대로 완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어떤 기준으로 이곳을 선정했는지 밝혀달라는 질문에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을 미국인이 얼마나 될까.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자기 리조트에 외국정상을 유치하고 돈을 받는 것이 연방헌법이 정한 공직을 통한 사익추구 금지에 해당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내년 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에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푹푹 찌는 한 여름에 텅텅 빈 자기 호텔 방을 외국원수로 채워놓고 민주당과 언론의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정치감각이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이 호텔은 장사가 안 돼 가치하락을 인정, 최근 카운티정부가 재산세를 500만 달러나 깎아준 상태다.
멀베이니의 헛발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팍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해 조 바이든 아들의 비리를 파헤쳐 달라는 부탁을 한 것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원조를 늦춘 것과 대가 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가 일이 커지자 뒤늦게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대가 관계가 없기 때문에 탄핵이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해 온 공화당 의원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지금까지 충실한 트럼프 지지자였던 공화당 의원들과 백악관 사이를 벌어지게 한 결정적 사건은 트럼프의 일방적 시리아 철군이라는 게 중론이다.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연방상원의원이 이를 “트럼프 취임 후 가장 잘못된 결정의 하나”라고 부른데 이어 미치 맥코넬 연방상원 공화당 원내총무는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통해 이를 ‘중대한 실책’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주요 인사들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은 트럼프 취임 후 처음이다.
트럼프는 국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외적으로도 곤경에 빠져 있다. 미군철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시리아를 침공한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휴전을 요구한 트럼프의 친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흘리고 있다. 그리고는 미군기지에 대한 발포를 명령하는가 하면 자체 핵 개발까지 선언했다.
최근 열린 미중간의 무역협상에서 트럼프는 중국이 400억에서 500억 달러의 농산물을 사주기로 했다며 미국 농부들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자화자찬했으나 중국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경제규모는 미국이 중국보다 클지 몰라도 지금 급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중서부 농부 표가 없으면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야 한다.
이 달 초 스웨덴에서 열린 미 북한간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은 김정은의 최우선 순위 사업인 원산 갈마 관광개발사업 지원안을 들고 갔으나 ‘새로운 것이 없다’며 깨끗이 거절당했다. 북한도 정치적으로 약해진 트럼프에게 그 정도로는 내년 선거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은과의 ‘돈독한 관계’도 ‘아름다운 편지’도 헛소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20세기 초 일본과 러시아의 종전을 중재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디 루즈벨트는 “말을 조용히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들고 다니라”는 조언을 했다. 이제 온 세계가 트럼프는 말을 크게 하지만 든 것은 솜방망이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거기다 최근 미국민의 탄핵 지지여론은 과반수를 넘어섰다. 트럼프가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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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