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심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019-10-15 (화)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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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한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배심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라는 우편물을 받고 가슴 철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막상 당사자가 되어 소환장을 받고 보면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어 답답하기 마련이다.

미국 배심원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먼저 재판회부에 앞서 중대 범죄사실을 따져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원단(grand jury)과 기소되어 재판 중인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소배심원단(petit jury)이 바로 그것이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대배심원단은 보통 16~23명으로, 소배심원단은 6~12명으로 구성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검사, 변호사, 판사 같은 법률전문가들이 있는데 왜 일반인들로 구성되는 배심원단이 따로 필요한지 궁금해 한다. 원래 배심원 제도는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 대표를 결정하듯이 소수의 사법권력이 판결을 전횡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준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장치이다. 가령 독재 정부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기소권을 남용한다든지 비공개 재판을 통해 유죄로 몰아가는 상황 등을 그려보면 배심원 제도의 당위성을 수긍할 것이다.


따라서 대배심과 소배심 제도 둘 다 미국 연방 수정 헌법 5조~7조에 각각 명시되어 있을 만큼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 국민권리 중 하나로 검사와 판사는 각 배심원단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하다.

두 제도의 주요 차이점들을 꼽아보면 대배심원단은 한번 선정되면 2주에서 몇 개월간 임명되어 여러 사건을 심리하는데 비해 소배심원단은 재판 사건별로 구성이 되고, 대배심에서는 모든 수사 및 증거제시가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소배심이 참여하는 재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대배심원들은 검사가 제시하는 증거물을 토대로 기소여부를 판단하는데 이 때 검사들은 관련법규를 자문해주는 법률상담역(Legal Advisor)을 겸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대배심원단은 증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할 수도 있고 관공서 등에 자료제출 요구도 가능하다.

한편 소배심원단이 구성된 재판에서의 재판장은 재판중재와 더불어 증거채택 및 관련 법규를 해설해주며 배심원들은 이를 근거로 평결을 내리게 된다. 형사사건에서 유무죄 판단은 배심원이 내리더라도 양형은 보통 판사가 결정하지만 사형제도를 존치하고 있는 주에선 배심원단이 판사 대신 결정하기도 한다.

또 한 번에 많은 사건들을 다뤄야 하는 대배심원단은 다수결로 표결하는데 반해 소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평결하는 것도 차이점이랄 수 있다. 만장일치에 실패할 경우에는 미결정 심리(mistrial)로 다시 새로운 배심원단을 꾸려 재판을 계속하게 된다.

배심원 제도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국민의 상식과 경험에 의지하여 법을 적용하다보니 같은 증거에 의한 범죄 혐의를 두고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뉴욕 브롱스의 배심원단은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또는 히스패닉계 중에서 추출된 브롱스 배심원들이 평소 뉴욕 시 경찰의 인종 차별에 따른 피해의식 때문에 감정적으로 형사피고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같은 뉴욕 시 스테튼 아일랜드의 검찰청이 85%의 승소율을 보인 반면 브롱스 검찰청은 49%밖에 승소하지 못한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재판의 공정성 확보와 법조인들의 배타적 판단에 대한 국민의 감시 등 장점이 많은 배심원 제도이지만 근래 들어 미국에서도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이다. 형사 사건의 경우 대부분이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통해 합의처벌로 해결되고 있고 민사사건 역시 대체적 분쟁 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등으로 많이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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