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문화 능력

2019-10-09 (수)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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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이 실시한 ‘Cultural Proficiency’ 교육에 참여 할 기회가 있었다. ‘Cultural Proficiency’를 그대로 번역한다면 ‘문화 능력’이 되겠으나 학군 내의 다양한 인종,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을 고려할 때 ‘다문화 능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겠다.

이 교육 실시의 주된 이유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이 다시금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교육대상은 교장, 교감들과 각 학교의 ‘형평성 연계 담당자’들이었는데, 우선 그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학교에 돌아가 다시 나머지 교직원들에게 같은 교육을 시키기로 했다.

나는 이 날 교육 중 마지막 부분인 ‘실제 적용’ 토의에 참여했다. 이 토의에서는 하나의 가상 상황을 놓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는데 그 가상 상황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사회과목을 20년 째 가르쳐 온 교사가 있다. 최우수 교사상을 받았던 그는 동료 교사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다. 그는 원칙주의자이며, 그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어느 학생에게도 특혜를 베풀지 않는다. 그는 학생들에게 첫 글쓰기 과제를 내주면서 정해진 지침을 따르라고 주지시켰다.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 글을 잘 쓰는 흑인 학생이 있었다. 주 전체 글쓰기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글쓰기에 있어 일정한 틀에 갇히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의사 전달을 위한 글쓰기가 꼭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이 학생은 그 글쓰기 과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자신의 글에 만족한다. 교사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교사의 생각은 달랐다. 학생의 글이 여러 면에서 자신이 정한 지침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글 내용에 꼭 포함시켜야 될 요소들이 보이지 않았다. 교사는 65점을 주었다.

돌려받은 글에 적혀 있는 채점 결과를 본 학생은 그 글을 자신의 책상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수업 중에 교실을 허락 없이 나가면서 교사에게 다시는 그 수업에서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다. 낙제해도 좋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교사는 바로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학생의 ‘무례’함을 훈육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교무실에 연락해, 학생이 무단으로 교실을 떠났고 그 학생이 그 날 자신의 수업으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얘기한다.)

이런 상황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과 질문들이 제기 되었다. 과연 교사가 취한 행동이 옳았나. 아니면 어느 부분에서 달리 했어야 했나. 혹시 65점을 주기 전에 학생에게 먼저 잘못한 점을 설명하고 학생으로부터 해명도 들은 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나. 흥분해서 교실을 뛰쳐나간 학생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최선일까. 바로 훈육 기록으로 남기고 교무실에 연락해 교실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얘기한 것도 감정적 처리가 아니었나.

또한 여기에서 학생이 ‘흑인’이었다는 점이 아무런 상관이 없나. 만약에 학생이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나 아시안이었다면 교사가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같은 상황에서 교사의 인종적 배경에 따라 다른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의견들과 질문들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여러 부분에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토의가 끝나 갈 때 쯤 나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백인 교장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그날 받은 교육 내용 가운데 새로운 것이 있었나. 그냥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닌가. 그 질문들에 교장은 대부분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용 중 공개적으로 거론하기에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그러한 ‘불편한’ 내용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학교에 돌아가서도 다른 교직원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쪼록 교육청이 시도하는 다문화 능력 배양 교육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교육에 있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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