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헤지펀드 창업자 속속 퇴진…AI 도전에 ‘백기’ 드나

2019-09-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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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인생, 시장과 경쟁하고 싶지 않다”…카리스마 부재시대

미국에서 헤지펀드 창업자들의 은퇴가 잇따르고 있다. 좋은 실적을 올려온 카리스마 펀드 청산이 속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활용펀드가 출현하면서 '감'과 '센스'에 의존하는 펀드 운용으로는 계속해서 수익을 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펀드 업계는 이제 카리스마 부재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고객인 투자가들의 수익을 올려주기 위해 남은 인생을 S&P500 기업의 주가지수 운용수익과 경쟁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


작년 중반 헤지펀드 '오메가 어드바이저스'를 개인자산으로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한 레온 쿠퍼맨이 지난 10일 헤지펀드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1991년 설립된 오메가는 미국 펀드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업체의 하나다. 그가 이끄는 오메가는 오랫동안 S&P500 주가지수의 총수익률을 웃도는 수익을 올려 투자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쿠퍼맨은 "헤지펀드로 충분히 벌었다"면서 "76세가 된 지금 더 이상 시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미국 조사업체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올해 1-3월에 청산한 헤지펀드 수는 213개로 136개에 그친 신규 설정 펀드수 보다 많았다. 작년에는 659개 펀드가 청산되고 561개가 새로 설정됐다. 특히 1990년대에 설립된 오래된 펀드가 청산하거나 투자가에게 자금을 돌려주고 개인자산만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한 사례가 많다.

1991년에 설립된 SPO파트너스와 1995년 설립된 세미놀 파트너스도 펀드를 청산,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키로 결정했다.

스티븐 코엔 SAC캐피털(1992년 설립) 운용자는 2014년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당시 공매도로 거액을 벌어들인 존 폴슨도 몇년내에 패밀리 오피스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명한 투자가 데이비드 팃퍼가 이끄는 어팔사 매니지먼트도 펀드 자산을 투자가들에게 반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유명 펀드들이 운용사업에서 철수하는 배경에는 ETF(상장지수펀드) 등과의 경쟁 격화가 자리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투자가들은 ETF가 같은 수익을 내면 ETF 투자를 선호한다. ETF의 운용수수료율이 낮은 것도 투자가들에게는 매력이다.

예탁 자산의 2%와 성공보수로 이익 증가분의 20%를 징수하는 종래 헤지펀드에는 연금기금 등의 기관투자가도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는 존재다. 펀드 운용사가 당면하고 있는 난제들이다.


HFR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운용자산 총액은 올해 6월 말 기준 3조2천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지만 펀드 수는 2014년 이후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AI를 활용해 대체 데이터를 구사하는 일부 AI펀드는 좋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분야의 유명 펀드인 투시그마는 수학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 15명을 고용하고 있다. 직원의 60%는 전통적인 금융분야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펀드의 운용자산은 580억 달러에 이른다.

니혼게이자이는 인공지능 펀드의 등장으로 수지맞는 종목을 고르는데 프로였던 유명 펀드가 차례로 사라지면서 카리스마 부재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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