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선 풍향계의 방향

2019-09-1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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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선거제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공천제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 지도부가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공천권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본인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지도부에 밉보이면 그 사람의 정치생명은 끝이다. 반면 미국은 예선을 통해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후보가 된다. 어느 쪽이 더 민주적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선거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도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당의 유력자들이 후보를 결정했다. 그러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월남전 패배, 고실업과 고인플레 등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당 운영방식도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당내 자유경선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1976년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로 무려 17명이 나왔다. 그 때까지로는 최대 숫자다. 그중 한 명이 조지아에서 땅콩농사를 짓던 지미 카터였다. 주지사를 한번 한 것이 정치경력의 거의 전부였지만 깨끗한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그는 또 새로 바뀐 제도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의 중요성을 제일 먼저 간파하고 다른 후보들이 거들떠보지 않은 이 주에서 가장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그 결과 무명이나 다름없던 카터는 아이오와에서 1등을 했고 그 여세를 몰아 뉴햄프셔에서도 이기면서 졸지에 대세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선에 뛰어든 민주당 후보들 숫자는 올 초 20명이 넘었다. 1976년을 제치고 사상 최고다. 그러나 지금 후보 수는 10명 선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두 자리 이상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조 바이든, 엘리자벳 워런, 버니 샌더스 셋뿐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 들 셋 중에서 대선 후보가 나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바이든은 두 자리, 워런과 샌더스는 한자리 숫자 차이로 트럼프에 앞서 가고 있다. 반면 트럼프 지지율은 하락 추세다. 갤럽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은 지난 6월 44%에서 9월 39%로, CNN은 43%에서 39%, ABC도 44%에서 38%로 내려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경기전망이 악화하는 것도 그의 재선을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60%가 내년 불황이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예측과 실제 결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기는 다르다. 대다수 미국민이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면 지갑을 닫을 가능성이 커지고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줄면 실제로 불황이 올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트럼프 패배가 기정사실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중 무역분쟁은 해결될 수 있다. 최근 트럼프가 중국산 물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여를 늦추고 중국이 이에 화답해 미국산 농산물에 수입 길을 열어준 것은 협상 타결이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묵시적 합의에 도달했음을 말해준다. 무역분쟁이 완화된다는 조짐만 보여도 불황이 오지 않을 가능성과 트럼프 재선 확률은 높아진다.

트럼프 재선을 가능케 할 또 하나의 요소는 민주당이 지나친 자신감으로 미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극단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경우다. 밀입국을 전면 허용하고 개인 건강보험을 금지하며 노예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인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어차피 이긴 판이니 이번에 미국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중도표 이탈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총 유효표가 아니라 주 별로 승자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도록 한 미 선거제도도 변수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는 전체 표에서 300만 표를 이기고도 미시건, 펜실베니아, 위스콘신에서 7만 표를 지는 바람에 세 주 선거인단을 모두 뺏기고 지고 말았다. 내년 선거에서도 전체 표수에서 이긴 사람이 격전지에서 근소한 차로 패함으로써 대권 도전에 실패하지 말란 법이 없다.

‘정치에서 한 달은 영원과 같다’는 말이 있다. 아직 미 대선은 1년도 더 남았다. 지금으로는 민주당이 유리해 보이지만 자만하기에는 일러도 너무 일러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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