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의 마지막 열흘, 그러니까 8월22일부터 31일까지. 이 기간은 훗날 한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까.
문재인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일본과 지소미아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그날이 8월 22일이다.
그리고 3일 후 25일 오전부터 대한민국 군은 독도 인근해상에서 그 이름도 자못 거창한 ‘동해 영토수호훈련’에 전격 돌입했다. 해군과 해경 함정, 해군과 공군 항공기, 육군과 해병대 병력 등이 참가해 사상최대 훈련을 펼친 것.
이틀 후 8월 28일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대사를 차례로 초치했다. 일본대사에게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킨 아베정부의 무도한 짓을 꾸짖는 한편 미국대사에게는 대한민국은 당당한 주권국가임을 주기시키면서 주권 침해성의 발언을 삼가라고 경고한 것.
그리고 다음날 29일.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에게 ‘정직하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로 끝난 게 아니다. 느닷없이 태국과의 지소미아를 의결했다. ‘신 남방정책’ 강화수단의 일환이라는 설명과 함께. 거기다가 청와대는 주한미군기지의 조기반환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김정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 표시와 함께.
거칠게 없다. 질풍노도와 같다고 할까. ‘미국에 노(no)라고 할 수 있다’ 정도가 아니다. 수퍼 파워 미국의 대사를 꾸짖는 그 모양새는 대한민국이 울트라 수퍼 파워라도 된 것 같다.
저 위대한 고구려도 일찍이 제대로 하지 못했던 초(超) 자주외교를 펼치면서 일대 가관을 연출했다고 할까. 그러니 2019년 8월의 그때 그 순간은 한국사, 아니 민족사를 빛낸 명장면으로 혹시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그런데 갈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소미아를 파기하고 일본이 대한민국의 주적인 양 군사훈련을 통해 반일 프레임을 부쩍 강화한다. 그러면서 비장의 반미 카드까지 만지작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국면전환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국은 계속 ‘조국 수렁’에 깊이 침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집권여당과 검찰의 심각한 대치상황이 바로 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태의 하나다. 검찰의 조국 비리 전격수사에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 청와대와 여권이 뒤늦게 전열을 가다듬고 가히 ‘결사옹위’ 수준의 결기를 보이며 조국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그 모습이 그렇다. 예기치 못한 검찰의 쿠데타(더 나가 법조계 일부도 동조한 쿠데타였나)에 망연자실해 있다가 뒤늦게 허둥지둥 반격에 나선 꼴이라고 할까.
거침없는 반일에 반미, 그리고 자주외교 쇼우-업이 별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또 다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태다.
일본이 반도체소재 수출규제를 가하자 반일전선 최전방에 나선 인물이 조국이다. ‘죽창가’ 선창으로도 모자라 ‘반일은 곧 애국’이란 프레임을 덧입혀 편 가르기에 나섰다. “절반의 적극적 지지를 얻기 위해 절반은 적으로 돌려도 상관없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일찍이 한 이 말을 전략교범으로 삼았다고 할까.
그런데 그 조국의 민낯이 그만 드러나고 말았다. 딸 부정입학 의혹 등 각종 비리사실 폭로와 함께 ‘단군 이래 최대의 위선자’란 비난이 쏟아지면서 권력의 내상은 깊어만 가고 있는 것.
그 조국 지키기에 여권은 물론 내로라하는 진보세력 데마고그들은 모두 동원됐다. 그러나 그들의 말잔치를 통해 드러난 것은 진보가치에 대한 얄팍한 밑천에 ‘우리의 적은 무조건 박멸해야 한다’는 망국적인 진영 논리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 반대가 찬성의 배 이상으로 높아간다. 덩달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는 좌파 논객들의 조국 구하기 궤변에 국민 대다수가 식상,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외에서의 반응은 아예 경멸적이다. “트럼프는 문재인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말이다. 동시에 묻어나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깊은 분노감이다.
사드배치를 놓고 베이징이 압력을 가하자 대한민국의 국방주권까지 포기하면서 저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중국이 보복을 해오자 침묵으로 일관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중 운명공동체임을 다짐했다. 이런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삼각동맹 구도에서 탈피, 친중으로의 노선변경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다수 워싱턴 관측통들의 시각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종족적 민족주의 노선의 문재인 정권이 ‘주사파 외교’를 구사, 결국은 자청해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에 휩쓸려 들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시각도 흡사하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제 2의 애치슨라인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거다.
거침없는 반일에, 반미, 그리고 초 자주외교행보로 시끄럽던 2019년 8월 말의 시점.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문재인 정권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안팎으로. 그 정황에서 ‘우리 편은 모두 모여라’는 절박한 규성(叫聲)의 퍼레이드에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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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