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민은 왜 불안한가?

2019-08-24 (토)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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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일본정부의 한국수출 규제 문제를 미국에서는 어떻게 지켜보는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지역사회 한인단체를 통해 그와 관련된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 외에는 달리 수출제한 조치로 인한 반응을 체감 할 수 없었기에, 이곳 언론의 반응을 훑어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대 모든 뉴스들은 텍사스에서 벌어진 총기 참사에 집중되어 있었고, 한일 문제에 관한 기사를 일부러 검색하지 않고는 찾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자국 내의 참사로 긴장감과 궁금증이 증폭되다보니 먼 타국의 무역 문제는 대중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간 듯 했다.

언제부턴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사의 보도내용 보다 대중의 반응에 더 큰 관심을 가진 나는 습관처럼 SNS에 접속했고, 한 지인이 공유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저 정당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수정헌법 2조의 폐지를 반대해오다 급기야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총격 범죄율이라는 악명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공포와 증오를 조성하는 현 지도자를 암시적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 신상이 수면에 떠오르면서 민주당은 이민자 혐오를 부추겨 온 현 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매해 참사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버젓이 인정되고 있는 민간인 총기 소지 실태를 비난했다. 반면 공화당은 원래 민주당 지지자로 기명된 용의자의 공개 프로필이 사건발생 시기에 제 3자의 악의적인 수정으로 인해 공화당으로 잘못 알려졌으며, 잦은 총기 폭력의 궁극적인 원인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헌법 조항이 아니라 무분별한 비디오게임이 아동심리에 미쳐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진실공방 속에 과연 한 비정상적인 시민의 행동을 현재의 총기관련 정책들과 교묘하게 연관시켜 정권의 반전을 노리는 야당의 모략인지, 아니면 정작 위기가 봉착한 순간에 우회적이고 불확실한 원인만을 규탄하는 겉포장 식 조작으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현 정권의 술수인지는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져 버렸다.

미국에서 총기 사상자들이 발생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수출규제의 여파로 환율과 증시가 직격탄을 맞은 듯 했다. 원화 약세가 제 2의 IMF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두고 어차피 ‘감탄고토’식의 정략적 논쟁으로 과거사를 부정하고 정당화하면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된 일본의 아베 정권에 맞서 한번쯤은 겪어나가야 할 고비인지, 아니면 국가의 안보에 실질적인 문제가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사건인지에 대한 상반된 보도들이 팽배하게 맞섰다.

누가 진실한 주장을 하는 것인지 좀처럼 아무도 믿기 힘든 이 시대에, 수출 전쟁과 무기 전쟁만큼이나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정보의 전쟁이다. 국민들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독재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정당체제는 공동사회를 합리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건강한 경쟁과 협력의 도구가 아닌, 아전인수식의 교묘하고도 기만적인 논리로 정권을 교체하고 연장하기 위해 벌이는 이전투구의 장이 돼 버렸다.

물론 모든 정책을 이도저도 아닌 중도지점에서 절충하는 것만으론 국가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지나친 정치의 분할현상은 비생산적인 갈등만 만든다. 마치 정치인들에게 공공의 적은 국가나 국민이 직면한 문제들이 아니라 상대편 당인 듯하다. 권력싸움과 정략에 매몰돼 있는 동안 정작 위기가 닥치게 되면 제대로 대처나 할 수 있을는지를 염려해야 하는 국민은 불안하다.

극도의 적대감을 드러내며 서로 싸우고 다투기에만 여념 없는 정치는 국민들에게 평정심을 줄 수 없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정치권 풍경이 바로 그렇다. 혼란 속에서도 국민들은 항상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로 버텨내왔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불안에 떨게 만드는 정치는 국민들 보기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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