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부부의 슬픈 자살메모

2019-08-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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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아침 8시23분, 911 전화가 울렸다. “난 자살하려고 합니다”라고 알린 노인은 출동경관들에게 인척 연락처 등을 적은 메모를 남겨두었다고 말했다. 응답요원은 통화시간을 끌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린 앞쪽 베드룸에 있을 겁니다”를 마지막으로 그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시애틀에서 약 100마일 떨어진 왓컴 카운티 펀데일 인근 작은 마을 그의 집에 경찰이 도착한 것은 15분 후. 77세 브라이언 존스와 76세 패트리샤 휘트니-존스 부부는 ‘앞쪽 베드룸’에 나란히 누워 숨져 있었다. 아내는 한 발, 남편은 세 발, 둘 다 총상 사망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몇 개의 메모 중엔 아내가 중병을 앓고 있었으며 자신들에겐 더 이상 의료비를 감당할 힘이 없다는 자살 이유가 적혀 있었다.


지난 한 두 주 미국을 휩쓴 수많은 죽음 뉴스의 소용돌이에 묻혀버렸던 이 부부의 죽음은 왓컴 카운티 쉐리프국 페이스북에 실리면서 뒤늦게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살해 후 자살’로 규정하는 미국에선 잘 쓰지 않는 ‘동반자살’이라는 용어가, 그래도 더 적합할 듯한 이 죽음의 이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은 충격과 슬픔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시달리는 ‘학자금 빚’ 못지않게 노인들을 힘겹게 하는 것이 ‘의료비 빚’이다. 노인 인구는 전체의 15%이지만 노인 의료비는 전체의 34%를 차지한다. 수입은 줄어들고 의료비는 상승하니 빚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존스부부의 의료나 재정 상황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지만 12만2,000달러의 크레딧카드 부채로 2016년 파산신청을 했던 기록은 나왔다. “감당하기 힘든 처방약 값을 크레딧카드에 의존하는 상당수 노인들이 빚더미에 점점 짓눌리는 경우가 흔하다”고 전한 크레딧 상담가들은 이런 의료비 빚이 노인 파산신청 이유 중 하나라면서 처방약 값 지불지원 단체와 연결이 가능하니 너무 늦기 전에 상담해줄 것을 당부한다.

부자 아닌 노인들이 다 의료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메디-메디’로 불리는 의료혜택 수혜 노인들에겐 의료비 걱정이 없다. 노인들의 정부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 의료지원인 메디케이드(캘리포니아는 메디칼), 두 가지를 다 가진 경우다.

문제는 중산층에 속하는 노인들이다. 재산이나 수입이 메디케이드를 받기에는 ‘너무 많지만’ 폭등하는 의료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사람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스스로 해결하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면 무너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진 메디케어는 자기 부담금이 높을 뿐 아니라 양로병원과 자택 간병 등 롱텀케어는 아예 커버하지 않는다.

유일한 옵션은 재산이 바닥난 후 메디케이드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의료비에 치인 본인과 가족들에게 마지막 소원이면서도, 평생 일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온 중산층 노인들에게 “저소득층 전락은 좌절감을 준다”고 시카고대학 NORC연구소 캐롤라인 피어슨 부소장은 말한다.

2014~2029년 사이 중산층 노인인구 문제를 분석한 NORC연구소의 리서치는 현재 790만명인 중산층 노인이 2029년엔 1,44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중 54%는 롱텀케어를 감당할 능력이 없을 것이지만 이들을 위한 플랜은 아무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잊혀진 노인 중산층’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껏 한인노인들이 누려온 ‘메디-메디’ 수혜자격에 더 이상 해당되지 않을 대부분의 새로운 한인노인 세대 앞에 놓인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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