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scary movie’… 아시아 안보현실

2019-08-05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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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 샷으로 보면 평온해 보인다. 그 스냅 샷을 모아 동영상으로 보면 전개되는 것은 무서운 영화(scary movie)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두고 미 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가 한 말이다.

“아시아 세기(Asian Century)는 진작 끝났다. 외교, 안보적 갈등, 침체된 경제, 정치적 곤경 등으로 아시아의 장래는 극히 불투명해 보인다.” 후버 연구소의 마이클 오슬린의 진단이다.

들려오는 소리마다 음울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는 반면 정치와 안보 면에서는 갈등이 심화된다’-.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했던가. 그 역설도 이제는 안 통하는 것이 오늘날의 아시아의 안보, 그리고 경제 현실이란 이야기다.


아시아를 휘감고 있는 이 지정학적 난기류, 그 원인은 그러면 어디서 찾아질까.

“앞으로의 세기는 중국, 더 나가 아시아의 세기가 되는 것은 명백한 운명이다, 아시아의 가치는 강조되고 미국의 영향력은 쇠퇴할 것이다.” 한동안 전 세계를 지배해오다시피 한 담론이다. 그 담론체계가 트럼프가 일으킨 지진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 1차적 원인은 여기서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중국을 타깃으로 한 무역전쟁이 바로 그 지진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체의 구조적 문제로 중국경제는 성장 동력이 꺼져 가고 있었다. 그 정황에 발생한 미국과의 무역전쟁 결과 중국의 대미수출 전선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뿐이 아니다. 주요 다국적 기업들의 중국철수와 함께 전 세계적 공급체인이 재정비되면서 중국경제는 이중삼중의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새삼 드러난 것은 중국경제의 허약성이다. 이와 함께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는 한낱 신화(myth)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경제문제만이 아니다. 티베트와 위구르족 자치구도 모자라 홍콩과 타이완의 민주주의 체제를 짓누르려 들고 있다. 남중국해의 내해(內海)화를 꾀하는 등 공산 전체주의의 세계화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국은 아시아지역 전체에 정치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홍콩시위는 8주째 접어들면서 그 시위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베이징의 일국양제(一國兩制) 보장이 거짓말로 드러나자 중국공산당 체제를 거부하는 반체제 시위로 변모하면서 동병상련 처지의 타이완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진핑은 그러면 홍콩사태를 그대로 방치할까. 무력진압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톈안먼사태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엄청난 정치적 파장이 뒤따른다는 것이 대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아시아를 휘감고 있는 지정학적 난기류, 그 또 다른 진원지는 한일갈등에서 찾아진다는 것이 오슬린의 지적이다. 무엇이 아시아의 두 민주국가 간의 경제전쟁을 가져왔나. 해묵은 민족감정과 역사전쟁이 먼저 지적된다.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안보관의 차이가 더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 대다수 미 언론의 시각이다.

‘김정은은 비핵화 의사가 전혀 없다’- 일본의 아베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반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 의사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김정은 대변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북한에 대해 유화적 입장을 보여 왔다.

이같이 극명한 입장차이는 불신을 불러왔다. 거기다가 문재인 정부의 의도성이 짙은 반일 드라이브는 일본 내 반한정서를 유발, 갈등을 극도로 확산시키게 됐다는 것이 케이토 인스티튜트의 테드 카핀터의 지적이다.

문재인과 아베 정부의 이같은 안보관의 갭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현격한 차이’에서다. ‘21세기는 중국 세기’라는 담론을 굳게 믿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는 친 중국, 친북노선을 걸어왔다. 반면 미국보다도 먼저 ‘인도-태평양 안보’라는 개념창출과 함께 중국견제정책을 추진해왔다. 그것이 아베 정부다.

그러니까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각자 지정학적, 혹은 전략적 결단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중의 대륙세력 지향이냐, 친미의 해양세력 지향이냐의.

문제는 친중 노선을 택한 문재인 정부에게 우군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반도체소재 수출규제를 해오자 문재인 정부는 WTO에 제소했다. 현장의 반응, 다시 말해 국제사회의 반응은 그러나 무관심에 가까운 냉대였다는 것이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지의 보도다.

중국과 북한은 그러면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일까. ‘그도 아니다’라는 것이 아시아타임스의 분석이다.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이 보복을 해오자 문재인 정부는 한미일 삼각안보동맹 참여를 안 하겠다고 중국에 약속했다. 국방주권까지 포기하는 저자세를 취한 것.

그러나 중국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7월23일 독도 상공에서 벌어진 러시아 전폭기의 영공유린은 그 연장선상의 행위로 보여진다는 것이 아시아타임스의 분석이다.

김정은의 푸틴 면담(4월), 시진핑의 평양 방문(6월)이후 타이밍에 중국과 러시아의 동해상에서 전폭기를 동원한 합동 기동훈련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뒤따라 북한은 미사일발사 도발을 해왔다. 이를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다는 거다.

김정은도 문 대통령을 박대하기는 마찬가지다. 툭하면 도발, 미국과의 대화 기회를 얻어내기 위한 ‘펀칭 백(punching bag)’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거다.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아시아의 안보지형. 이와 함께 날로 높아만 가고 있는 태평양의 파도. 그 한가운데를 ‘나 홀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 그 모습이 꽤나 위태로워 보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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