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창과 함포

2019-07-2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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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2일 수단의 수도 하르툼 인근 옴두만에서 허버트 키치너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마디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압둘라 알 타시의 회교도들과의 일대 혈전이 벌어졌다. 병력은 영국군 8,000에 이집트, 수단 지원 부대 1만7,000, 회교도 5만으로 수적으로는 회교도의 압도적 우세였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회교도 전사 1만2,000명이 사망하고 1만3,000명이 부상당했으며 5,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영국군은 47명이 죽고 382명이 다친 것이 전부였다. 이로써 북아프리카에서 회교 군대는 사실상 사라지고 수단과 이집트를 비롯한 광대한 지역이 영국의 보호령으로 떨어졌다.

회교 군대가 참패한 것은 이들의 애국심과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영국군 말대로 영국군에게는 맥심 기관총이 있었고 회교도에게는 없었다. 아무리 큰 칼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달려드는 회교 전사도 빗발처럼 쏟아지는 기관총 앞에서는 손쉬운 표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보다 4년 앞서 한반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894년 구국의 일념으로 들고 일어난 2만 동학 농민군은 지금의 공주 인근 우금치에서 관군/일본군 연합군과 맞붙었다.

죽창과 구식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용맹하게 3,000여 관군/일본군 연합군과 싸웠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역시 이들의 애국심과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합군은 남북전쟁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877년 사무라이들의 마지막 저항인 사쓰마 반란을 진압하면서 개틀링 기관총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농민군의 패배와 함께 조선의 운명도 사실상 결정됐다. 일본의 무력에 맞설 수 있는 저항세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국 민정수석이 자기 SNS에 ‘죽창가’를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조 수석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며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라고도 했다. 그는 또 “문재인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죽창가’는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으로 동학 농민혁명을 기리는 작품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창을 들고 나선 농민들의 마음은 기려야겠지만 죽창만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교훈도 얻어야 한다.

반면 이순신은 죽창을 들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다. 1592년 한산대첩에서 그는 55척의 배로 73척의 왜군과 싸워 59척을 침몰시키거나 나포했다. 아군 피해는 단 한척도 없었다. 두 번째이자 최대 승리인 명량 해전에서 그는 13척의 배로 130척의 왜군 배 대부분을 격침시켰다. 역시 아군 피해는 한 척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물론 이순신의 리더십, 학익진과 울돌목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는 뛰어난 전술 덕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조선 배에는 함포가 있었고 일본 배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가지고 있던 조총은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였던 현자총통이나 황자총통과 비하면 파괴력이나 사정거리가 게임이 되지 않았다. 조선 전함은 조총의 사정권 밖에서 대포알로 여유있게 일본 배를 부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고려 말 최무선이 왜구의 도발을 막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화약과 대포 제조기술을 배워온 것이 결정적 도움을 줬다. 최무선은 대포를 배에 장착하고 직접 왜구 토벌에 나서기도 했다. 1380년 왜구를 실은 배 500척이 지금의 금강 하류인 진포 일대에 상륙하자 최무선은 토벌대를 이끌고 이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퇴로를 잃은 왜구들은 삼한 일대를 돌며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으나 황산에서 이성계에게 참패를 당한 후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만다. 황산대첩으로 고려 말 스타로 떠오른 이성계는 이를 발판으로 조선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지금 이런 옛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는 열정과 구호만으로 얻어지지 않으며 오랜 기간 준비한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와 여당은 국민들의 반일감정 고취에 열을 내기에 앞서 우리에게 과연 일본과 싸워 이길 실력과 전략이 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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