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萬波息笛] 강제입양

2019-07-17 (수)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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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10여년간 수천명의 미즈라힘(중동 출신 유대인) 아기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출산 도중 죽었다는 병원 얘기를 믿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슈케나지(유럽 출신 유대인) 가정에 강제입양됐다. 아슈케나지는 미즈라힘을 열등한 존재나 개조의 대상으로 봤다.

2001년 진상조사위원회는 사라진 아기가 대부분 병으로 죽었다고 결론지었다. 비난 여론이 빗발쳤고 2016년 재조사 끝에 이스라엘 정부는 수백명의 아기가 다른 가정으로 보내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호주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컸다. 2010년 ‘강제입양에 관한 호주연방상원위원회’는 1950~1970년대 가톨릭교회와 입양기관 등이 15만여명의 미혼모 아기를 강제입양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과 정부가 친모와 입양인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은 당시 미혼모에게 양육 포기 서명을 강요하거나 서명을 위조해 아기를 친모에게서 떼어놓았다.

중국은 지금이야 경제성장을 위해 두 자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2015년까지만 해도 한 자녀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두 자녀 이상을 낳은 부모로부터 아기를 빼앗아 강제입양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1년 중국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보면 산아제한 담당 공무원들은 한 자녀 정책을 위반한 부모가 일종의 벌금인 사회부양비를 내지 못하자 아기를 빼앗아 성을 일률적으로 ‘샤오(邵)’로 고친 뒤 고아원에 보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외국에 입양됐으며 고아원 측은 입양비로 1인당 3,000달러를 챙겼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시절 스페인에서는 신생아 납치나 강제입양 사건이 많았다. 처음에는 독재정권 측이 반대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빈곤층이나 미혼 커플의 아기에까지 확대됐다. 수만명에 달하는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이네스 마드리갈씨가 최근 태어난 지 50년 만에 진짜 가족과 상봉했다.

그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퍼즐을 맞췄다. 이제 내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부모가 스스로 원해서 자식을 남에게 맡기는 자발적인 입양은 거의 없다. 빈곤이나 전쟁 등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내몬다는 측면에서 입양은 강제적이며 그래서 안타깝다. 하물며 친부모가 키울 수 있고 키우겠다는데도 자식을 부모 품에서 떼어놓는 강제입양은 참으로 잔인하다. 아기 수출 1위의 오명을 안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영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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