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요일 아침에] 잘못 접어든 양극화 해소의 길

2019-06-27 (목)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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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 한국경제, 기업만 부담 지우는‘소주성’때문

▶ 양극화는 대기업 노조가 만든 괴물, 분규중립·노동시장개혁으로 풀어야

수출이 6월에도 지난해보다 줄면 7개월 연속 줄어든다. 올해 1·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0.4%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던 지난 2008년 4·4분기(-3.3%)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경상수지는 4월 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됐다. 정부는 매년 4월에 지급하는 기업 배당금 때문이라지만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사정이 왜 이렇게까지 악화한 것일까. 집도의가 북핵 사태와 더불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양극화와 늙어버린 한국 경제 개선에 메스를 잘못 들이댔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라지만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들이 먹고살 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일자리 자체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만 들어간다고 해도 대기업·중소기업·정규직·비정규직으로 격차가 커 전직이 일상화 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일자리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 부문의 대규모 채용을 압박했다. 최저임금은 2년 만에 무려 29%나 올렸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도 밀어붙였다. 모두 기업들에만 부담이 가중되는 정책들이다.

급기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들고 일어나자 세금으로 땜질하며 ‘반창고 정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소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다. 그러나 결과는 성장은 마이너스로, 고용은 참사로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실업자가 늘면서 분배는 더욱 나빠졌다.

양극화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툭하면 파업으로 임금인상을 주도해온 강성 대기업 노조, 대기업 노조가 주축이 된 민주노총에 있다. 자동차의 경우 생산성(HPV·차량 1대당 평균시간)은 낙제점인데 임금은 완성차 5개사 평균 9,213만원(2016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인 도요타 9,104만원, 폭스바겐 8,040만원을 넘어섰다.

시간당 임금(2015년)을 기준으로 대기업 정규직이 100이라면 대기업 비정규직 64, 중소기업 정규직 52,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에 불과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높은 협상력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보호하다 보니 그 비용이 대기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전가된 게 실상이었다.

민주노총 간부로 있다 나온 이들이 민주노총을 “귀족노조” “연봉 1억원의 배부른 거지”라고 몰아붙이는 이유다. 대기업 노조가 노동시장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막으면서 노동시장이 기형적으로 바뀐 것이다. 전투적인 한국의 노동운동은 선진국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애꿎은 기업에 부담을 덤터기 씌우지 말고 대기업 노조와 민주노총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지막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실업급여를 인상하는 대신 3~5년간 대기업·공공 부문 임금을 동결해 하청·비정규직 임금을 올리자고 제안한 것은 이 같은 배경을 잘 담고 있다.

그는 덴마크 사례를 들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되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을 쉽게 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국회를 찾아 “기업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겠는가. 사실 우리나라는 1987년 6·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되고 민주화가 이뤄진 후 30년여간 노동 편향으로 정책 흐름이 이어졌다.

기업이 살고 기업이 번성해야 일자리 문제도 풀린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노동계를 설득해야 한다. 노동시장에 시장원리가 작동해 인적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노사문제에서 중립을 지키고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복잡한 임금체계를 직무급 중심으로 단순하게 개편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에 나서야 한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 기억난다.

소주성 정책은 가기 쉬운 길인가, 어려운 길인가. 포퓰리즘의 길인가, 개혁의 길인가. 문 대통령도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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