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국 제 2의 톈안먼 사태로…

2019-06-17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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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톈안먼 사태로 불거지고 말 것인가’-.

말 그대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홍콩의 전체 인구는 700여만. 한국의 경우에 대입시키면 700~800만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집결했다고 할까. 2019년 6월 9일의 홍콩 상황이다.

하루, 이틀, 그리고 한 주…. 경찰의 과잉진압과 함께 시위는 폭력적 양상을 보이면서 상황은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고 있다. 동시에 고개를 들고 있는 우려는 제 2의 톈안먼 사태의 가능성이다.


‘범죄인 인도 법안을 반대한다’- 구호는 심플해 보인다. 그런데 왜 100만 이상의 시민이 거리로 나섰나. 홍콩을 상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다시 말해 홍콩의 법치주의 민주체제를 허무는 장치가 교묘히 숨어 있어서다.

공산당 통치를 비판한다. 그런 사람들의 신병을 인도받아 베이징은 자의로 처벌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 억압. 단지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홍콩의 기업주들에게 그 법을 적용할 때 재산도 몰수할 수 있다. 그러니까 홍콩 주민들로서는 사활적인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이 사태는 그러면 어떻게 매듭지어질까. 전망은 하나 같이 비관적이다.

“수요일(6월 12일) 시위에서 경찰차가 불타는 등 충돌상황이 빚어진 것은 베이징이 심어놓은 비밀요원들의 도발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로 가장한 그들은 고의적 도발을 통해 유혈사태를 유도하고 있다. 군 개입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다.” 중국문제 전문 싱크탱크 시노 인사이더의 보도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베이징은 인접한 셴첸 지역에 이미 시위 진압군을 파견, 안정유지를 명목으로 홍콩당국으로부터 요청이 있을 때 투입할 태세가 돼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그러면 진압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시위가 저절로 잦아질 때까지 베이징은 참고 인내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부터 살펴보자. 이 경우 중국공산당이나 시진핑은 권위가 실추된 것으로 스스로 생각한다.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될 때(베이징의 입장에서 볼 때) 결국 군 투입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 현지 중국어 언론들의 진단이다.

“협상이란 것은 모른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마다 시진핑과 그 막료들은 강경책만 고수해왔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정이 그렇다. 서방세계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권문제에도 초강경자세로 일관해왔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상황에서 베이징은 한 가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에 혈안이 돼왔다. 외부의 불순 세력에게 중국은 포위돼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동원된 것은 ‘한(漢) 지상주의’란 중국식 내셔널리즘. 이런 마당에 홍콩문제에 양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거다.

포린 폴리시지도 같은 시각이다. 톈안먼 사태 이후 최대인 홍콩의 시위는 사실에 있어 반(反)베이징 시위로, 이로 인해 당내 강경파들의 입지만 넓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았다.

홍콩 사태는 보이지 않는 손, 다시 말해 ‘미국이라는 불순세력’이 중국공산당 체제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그들의 논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선전선동의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외부세력, 특히 미국의 개입 없이 반체제세력은 그같은 폭력적 시위 난동을 일으킬 수 없다는 환구신보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내려지는 결론은 베이징은 양보가 없다는 것. 사태는 결국 비극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경찰관들은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할까’- 한 홍콩 현지언론이 던지고 있는 질문으로, 그 만큼 절박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홍콩경찰은 2014년 우산운동 때의 경찰이 더 이상 아니다. 중국공산당 전국인민 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후보자를 사전 심사하여 채택하는 방식으로 결정하자 촉발된 시위가 우산운동으로 당시 경찰은 상당한 자제력을 보였다.

이후 당국은 대대적 물갈이를 통해 홍콩경찰을 베이징에 충성하는 경찰로 바꿔 놓았다. 그 경찰이 시위가 격화될 때 어떤 조치를 취할지 극도의 불안감을 내보인 것이다.

뭐랄까. 자유도시로서 홍콩은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할까. 시진핑이 홍콩주권을 양도 받을 때 보장한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 약속을 저버림으로써 애써 지켜온 자유와 민주주의 토대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주민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2019년 6월 홍콩의 상황이다.

홍콩 사태는 그런 면에서 일종의 ‘문명의 충돌’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또 다른 관측이다. 한(漢) 지상주의의 탈을 쓴 공산당 1당 폭정체제 문화가 그 세력을 확장해가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화를 잠식해 간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양상으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홍콩사태는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세력 간의 전 지구적인 충돌, 그 전초전이자 최전선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떠올려진다. 그 세기적 충돌에서 대한민국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중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의 후안무치성의 폭거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그게 문재인의 한국정부로 보여 하는 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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