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관세맨’

2019-06-04 (화) 민경훈 논설위원
작게 크게
작년 6월 싱가포르 이전 북한의 김정은은 자신의 집무실에 미사일 발사 버튼이 있다고 자랑했고 트럼프는 자기 것이 더 크다며 김정은을 ‘작은 로켓맨(Little Rocket Man)’이라고 불렀다.

김정은이 ‘로켓맨’이라면 트럼프는 뭘까. 아마도 ‘관세맨(Tariff Man)’이 아닐까. 이건 다른 사람이 붙여준 별명이 아니라 트럼프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는 작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참석 중 날린 트위트에서 “나는 관세맨이다. 다른 민족과 나라가 우리나라의 위대한 부를 훔치러 올 때 나는 그들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한다”라고 적었다.

트럼프는 원래 정치에 뜻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실토한대로 그는 2016년 대선에 당선될 생각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그의 행적을 보면 그런 그에게도 단 한 가지 확신은 있다. 그건 관세는 좋은 것이고 무역전쟁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는 그의 발언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작년 자신을 지지해 준 펜실베니아의 철강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캐나다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가안보를 그 이유로 들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미국을 위협해 본 적이 없는 캐나다의 철강이 어떻게 미국의 안보를 해친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설명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터키가 미국인 목사를 억류하자 그 석방을 위해 터키 물품에 대해 수입 관세를 부과했다. 자국민 안전 확보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그 석방 카드로 관세를 쓴 것은 아마도 트럼프가 처음일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바로 잡겠다며 중국물품에 대대적인 관세를 매긴 후 협상이 잘 마무리되고 있는 듯 말하다가는 느닷없이 판을 깨고 오히려 추가 관세 부과를 경고했다.

트럼프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대상은 중국 같은 잠재적 적국만이 아니다. 전통적 우방인 유럽과 일본에 대해서도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던 트럼프가 지난주에는 멕시코가 중남미 이민자의 미국 밀입국을 방조한다며 멕시코 물품에 대한 관세를 25%까지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오는 10일 1차로 5%의 관세를 매기고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10월에 5%를 추가로 올리는 방식으로 25%까지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북미 자유무역협정을 대체할 협정을 체결하고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멕시코에 정치적 이유로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협정을 무효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자유무역협정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일에는 트럼프에 고분고분한 공화당 일각에서도 트럼프의 이번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공화당 연방상원 재무위원장인 척 그래슬리는 트럼프의 이 조치가 대통령의 관세부과 권한을 남용한 것이며 의회의 뜻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관세가 올라가고 무역전쟁이 벌어질 경우 피해를 보는 것은 양국의 소비자와 기업들이다. 소비자들은 싼 값으로 좋은 상품을 살 기회를 잃고, 기업들은 역시 싼 가격으로 양질의 재료를 공급받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물건을 수출할 길이 막히게 된다.

트럼프는 관세를 무는 것이 상대국 기업과 국민들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든 관세는 자국민과 기업들이 부담하는 것이다. 하기야 트럼프의 거짓말이 이것뿐이겠는가. 그는 대선 기간 멕시코 국경에 ‘아름다운 장벽’을 짓고 멕시코로 하여금 돈을 내게 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멕시코는 지금까지 한 푼도 낸 적이 없다.

트럼프의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과 멕시코는 사절단을 보내 대화로 풀자며 일단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도 경제를 악화시켜 내년 대선에 악영향을 미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관세를 무기로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양국 국민과 지도자들의 체면도 걸려 있다. 자칫 1930년 때 대공황을 악화시킨 무역 전쟁이 재발하지 말란 법이 없다. 많은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이 불안한 모습으로 ‘작은 관세맨’을 지켜보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