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톈안먼사태, 30주기를 맞아…

2019-06-0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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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은 모두 차단됐다. 외국 관광객에 대한 검문검색도 부쩍 강화됐다. 2019년 ‘5월 35일’을 바로 앞둔 시점의 중국의 풍경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6월4일. 그 날짜가 인터넷에 오르면 바로 검열 삭제된다. 그걸 피해 일부 블로거들이 사용하는 날짜가 ‘5월 35일’로 그 6.4 톈안먼(天安門)사태 30주기를 맞아 베이징 일원에는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는 외신보도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없다고 했나. 그런데 그 중국의 1989년과 관련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는 민주화 시위가 ‘성공했더라면…’이라는 ‘what if’의 질문을 던졌다.


더디지만 타이완이나 한국유형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름의 분석이다. 중국공산당은 진화를 거쳐 다당제를 수용해 민주체제로 거듭난다. 그 중국은 그리고 보다 책임감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됐을 것이란 것. 아주 틀리지는 않는 이야기 같다. 그러나 그 분석이 그렇다. 일종의 ‘희망고문’ 같이 들린다.

톈안먼사태 이후 30년. 중국은 일종의 괴물이 된 것 같다. 공산 전체주의의 틀에 한(漢)지상주의를 덧입힌 변종체제랄까. 그 시진핑 체제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나섰으니….

여기서 한번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1989년을 시점으로 중국의 민주화는 가능했을까’- 답은 아무래도 ‘노우’로 기우는 것 같다. 적어도 30년 전의 그 때 그 참상을 파헤친 홍콩 신세기출판사의 신간 ‘마지막 비밀’(The Last Secret: The Final Documents From June Four Crackdown)에 따르면 더 그렇다는 생각이다.

뭐랄까. 공산주의자, 더 정확히 말하면 폭력혁명을 주창한 레닌주의에 더 가까운 중국공산주의자들의 본질에 대한 무지는 섣부른 중국 민주화의 기대를 높여왔다고 할까. 이것이 ‘마지막 비밀’이 전하는 행간의 메시지로 보여 하는 말이다.

1989년 4월 15일 인민의 여망이 높았던 후야오방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는 지나치게 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2년 전 당으로부터 서기직을 박탈당했다. 그런 그가 죽자 수천, 수만의 학생들은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것이다.
시위는 400여 도시로 확산, 베이징에서는 한때 100만 군중이 톈안먼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하기도 했다. 부패한 공산당 규탄에서 시위대의 구호는 민주화 요구로 변해갔다. 공산당 수뇌부는 회의를 거듭, 대책마련에 나섰다.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계엄령 선포와 함께 무력진압 명령을 내린 것. 1989년 6월4일 탱크를 앞세우고 인민해방군은 톈안먼광장에 진입했다. 최악의 유혈사태가 발생, 최소한 1만명 이상의 시위대가 희생됐다.

그리고 두 주정도 지난 후 확대 공산당 정치국회의가 소집됐다. 덩샤오핑의 무력진압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 그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갔나. 그 내용은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홍콩의 신세기출판사는 그때 정치국원들(당 원로까지 포함)의 발언내용을 입수해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그 내용을 종합하면 몇 가지 그림이 겹쳐 떠오른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중증의 강박증세에 걸렸다는 것이 그 하나다. 그리고 자연계가 진공상태를 혐오하듯이 중국의 공산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민주주의 정치를 혐오한다는 것이 또 다른 그림이다. 그리고 그 중국의 정치시스템은 지도자를 독재자로 만들어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톈안먼사태가 발생했나. 그에 대한 공산당간부들의 분석은 간단히 말해 ‘결코 내 탓이 아닌, 모두가 남의 탓’으로 귀결된다. 톈안먼사태라는 위기를 오로지 ‘국내 불순세력과 해외의 적들의 공모라는 프레임’을 통해서만 바라본 것이다.

그들이 파악한 그 해외의 적의 괴수는 미국이다. 관련해 중국공산당은 국내외의 적들에게 영원히 포위돼 있다는 논리를 이끌어낸다. 때문에 경제개혁에 항상 앞서야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규율 강화에, 사회통제라는 것. 그리고 공산당의 분열은 바로 적에게 패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런 사태는 어떻게든 막아야한다는 것이 세 번째로 끌어낸 교훈이다.

그 발상, 그리고 내린 결론은 뭔가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30년 전 중국공산당 지도부나 오늘날 시진핑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가 판에 밖은 듯 똑같다는 점에서다.

50년대식의 공산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조건적 순응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다가 그 공산당은 부패하기까지 했다. 거기서 비롯된 것이 톈안먼사태다. 이후 중국은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중국사회 전반에 만연한 긴장감은 그 본질에서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지의 진단이다.

무엇을 말하나. 톈안먼사태 30년이 지난 후, 특히 시진핑시대 들어와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그러나 내부로, 사회전반의 긴장감은 더욱 깊어지면서 더 부서지기 쉬운 체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사회는 여전히 톈안먼사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따르고 있다.

30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그 기억 지우기에 혈안이 돼있다. 그뿐인가. 6,500여만 명을 아사로 몰고 간 대약진운동, 최악의 대중폭력사태를 가져온 문화혁명도 역사에서 말살하기에 바쁘다. 이처럼 과거를 두려워하는 체제가 중국공산당 체제다.

그런 체제가 과연 얼마나 오래 지탱될까. 톈안먼사태 30주기를 맞아 던져보는 질문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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