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가채무 비율 40%선 넘어 ‘곳간’ 더 풀겠다는 문 정부

2019-05-21 (화) 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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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 4년 전“나라빚 40% 넘어 곳간 바닥”… 공공부채 60% 넘어

▶ 한국당 “마이너스통장으로 나라살림”… 전문가“재정위기 국가 따라가나”

국가채무 비율 40%선 넘어 ‘곳간’ 더 풀겠다는 문 정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부터)가 지난 10일 추가경정예산(추경) 통과 협조 요청차 예방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고 있다. <연합>

문재인정부가 국가채무 비율 40%선을 넘어 나라 곳간을 더 푸는 정책을 추진하려 하자 정치권·학계 등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삼고 관리해 왔는데, 이 같은 원칙이 무너지게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우리 국가 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라며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결코 소모성 지출이 아니라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 개선을 위한 선투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국가채무 비율을 40%로 삼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세수 호황이 올해 끝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도 경제성장률 저하, 저소득층 소득지표 악화 등을 극복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홍 부총리는 “재정 건전성에도 유의해야 한다”며 국가채무 비율을 40% 수준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가 채무 비율 평균이 100% 이상인데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과학적 근거는 무엇이냐”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채무 비율은 미국 107%, 일본 220%, OECD 평균 113% 등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국채 발행까지 반영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9.5%로 추정됐다. 내년에는 예산 규모가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하면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예산이 예상된다. 이럴 경우 국가 채무가 780조원을 넘어서면서 국가 채무 비율이 40.3%까지 올라간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전망치는 2021년에 41.1%, 2022년에 41.8%에 이른다.

과감한 재정 확대 정책 추진으로 국가채무 비율 40%선을 넘기는 것은 우선 4년 전 문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 발언과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15년 9월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정부의 재정 상황을 비판하면서 “국가채무 비율이 마지노선인 40%선을 넘었다”면서 “새누리당 정권 8년, 박근혜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비판했었다. 두 번째로 국가채무 비율에는 공공기관 부채가 빠져 있어서 실제 나라빚 규모를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채무에 비영리기관 부채,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더한 ‘공공부문 부채’는 GDP 대비 60.4%(2017년 기준)까지 올라간다.

OECD 회원국은 ‘국가채무 비율 60%, 재정 적자 3%이내 유지’를 재정 건전성 기준으로 삼는다. 공공기관 부채까지 합치면 국가채무 비율 60%를 훌쩍 넘기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셋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의 경우 국가채무 비율의 적정 수준을 수평적으로 선진국과 비교하기 힘들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국가채무가 급격히 증가되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과 경제 위기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넷째, 한국의 경우 급속한 고령화와 통일 등도 대비해야 하므로 평소 무리한 재정 확대를 지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이다. OECD 회원국의 고령화 비율이 14%에 도달한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지금도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고령사회(고령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한 지난해의 국가채무 비율은 38.2%였다. 그런데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1979년, 1972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을 당시 국가채무 비율은 32.6%, 36.8%였다. 정부 관계자는 “통일 비용과 연금 부담이 각각 GDP의 10% 수준일 것으로 가정해 40%를 적정 국가채무 비율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학자는 “OECD 회원국과 단순히 국가채무 비율을 비교하는 것은 자칫 재정 위기를 맞은 나라들을 따라가자는 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은 “재정 지출이 확대되면 평균 생산성과 성장률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현재의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오히려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 환율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20일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이 전년 대비 8천억원이나 줄어서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할 시점에 정부는 추경안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게다가 내년도 예산안을 500조원 이상 편성하면 본격적인 마이너스 통장 나라 살림이 된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정미경 최고위원도 “이런 방식으로 국가채무 비율의 마지노선을 깨버리면 영화 제목 같은 ‘국가 부도의 날’이 온다”고 경고했다.

<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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