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고래의 싸움

2019-05-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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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 5세기는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시기였다. 5세기 초 그리스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리디아와 바빌로니아, 이집트까지 정복한 페르시아가 유럽 본토까지 침략에 나선 것이다. 페르시아는 처음 사신을 보내 복종의 표시로 그리스의 물과 흙을 보낼 것을 요구했지만 그리스는 이 사신을 죽이는 것으로 응답한다.

분노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는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며 양측은 기원 전 490년 마라톤 평원에서 일대 혈투를 벌인다. 당시 페르시아의 병력은 9만, 그리스는 1만에서 2만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아 군은 소문난 궁수 부대를 앞세워 활을 비오듯 퍼부으며 기선을 제압하려 하지만 이는 청동방패로 무장한 그리스 수비 진영을 뚫지 못한다. 화살 공격이 끝나자 그리스는 특유의 장창 부대로 페르시아 군을 포위한 후 도륙한다. 이날 하루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은 6,400명이 죽지만 그리스 사망자는 190여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 전령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2km를 쉬지 않고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숨을 거뒀다. 이것이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다.


그 후 10년이 지난 기원 전 480년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2차 침공을 시도한다. 일설에는 군대 수가 170만이라고도 하지만 사가들은 5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50만이라도 당시로서는 초유의 대군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군대도 480년 살라미스에서 아테네가 이끄는 해군에 참패하고 그 다음해인 479년 플라테아 전투에서 또 지면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로써 그리스는 자유와 독립을 지켜냈으며 그 후 50년간 전무후무한 황금기를 맞이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부터 에스킬루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페데스 등 극작가, 역사의 헤로도투스 등 서양 학문과 예술의 뿌리는 이때부터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했던 그리스는 순식간에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펠로폰네서스 전쟁’이라 부르는 그리스 도시국가 간의 내전 때문이었다. 페르시아에 맞서 그리스를 지킨 양대 축이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주도권 싸움이었던 이 전쟁의 발단은 코시라라는 작은 도시국가였다.

코린트의 식민지였던 코시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코린트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려 했고 이에 불안을 느낀 코시라가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하자 아테네가 이를 수락하면서 코시라는 파멸을 면했지만 이번에는 코린트가 불만을 품게 된다.

코린트는 동맹국이었던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는 결국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쉬운 말로 풀이하면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것이다. 사가들은 당시 군사적으로 최강이던 스파르타가 페르시아 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부상한 아테네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것이 이 전쟁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30년에 걸친 이 전쟁의 결과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꺾고 승자가 되기는 했으나 기력을 소진하고 얼마 안 돼 신흥 강자 테베에게 일격을 당하고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테베 역시 한때 ‘야만족’으로 깔보던 마케도니아에게 무너졌으며 그 후 그리스는 다시는 옛 영화를 찾지 못했다.

당시까지 사상 최대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 경위와 원인도 이와 비슷하다. 1914년 터진 1차 대전의 첫 총성은 유럽의 변두리 발칸반도 사라예보에서 울렸다. 세르비아 극렬주의자가 오스트리아의 대공을 암살하자 유럽 각국이 서로 동맹국을 보호하겠다며 전쟁을 선포하면서 초유의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실상 유럽인들 간의 내전인 이 전쟁으로 유럽은 기력을 소진하고 역사의 주도권을 신흥강국 미국에 넘겨준 것도 옛날 그리스와 비슷하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던 미 중국 간의 무역협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주 미국의 트럼프가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물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고 밝히자 이번 주 중국은 600억 달러의 미국상품에 같은 비율의 보복 관세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미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600 포인트 넘게 떨어지며 올 들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번 미중 갈등의 본질은 표면적으로는 무역 분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지배하던 기존 질서에 신흥강국 중국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양국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정치 군사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중에라도 타협이 이뤄진다면 다행이지만 과거 역사는 낙관적 전망을 힘들게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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