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네수엘라의 흑역사

2019-05-0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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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베네수엘라 지역을 처음 탐험한 유럽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1498년 3번째 탐사에 나선 그는 오리노코 강 하류에 쏟아져 나오는 담수의 양을 보고 이곳이 바로 지상 낙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인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에 쓴 편지에서 “이곳은 거룩하고 현명한 신학자들의 의견과 일치하는 지상 낙원이라는 위대한 증거가 있다. 바닷물 근처에 이토록 많은 양의 담수가 있다는 것은 듣지도 읽지도 못했다. 이 물이 낙원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면 이는 더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크고 깊은 강의 존재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그 후 이곳을 방문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물 위에 세워진 수상 가옥이 자신의 고향인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해 이곳 이름은 ‘베네치올라’라고 지었다. 다수 학자들은 베네수엘라라는 이름이 여기서 연유한다고 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곳에 살던 원주민 부족 이름이 베네시우엘라였다며 이것이 진짜 어원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그 후 300년 동안 스페인 식민지로 남아있던 이곳은 1811년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참여해 싸운 경력이 있는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가 독립을 선포하며 라틴 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된다. 그가 세운 첫 번째 베네수엘라 공화국은 대지진과 반란으로 1년 만에 무너지지만 1813년 ‘라틴 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아버지(El Libertador)’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가 바톤을 이어받아 제2 공화국을 세운다. 그러나 이 공화국도 왕정복고를 노린 군부의 도발로 몇 달 만에 끝난다.

그러나 볼리바는 이에 굴하지 않고 1817년 제3공화국을 세우나 이 또한 2년 뒤 앙고스투라 의회가 베네수엘라와 뉴 그라나다를 합병해 ‘대 콜롬비아 공화국‘을 세우면서 단명으로 끝난다. 그러나 독립군이 카라보보 전투와 마라카이보 전투에서 이기면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를 포함하는 ‘대 콜롬비아’는 독립을 인정받게 되며 1930년 베네수엘라가 여기서 떨어져 나오면서 독립국가로서의 역사를 시작한다.
독립은 했지만 그 후 오랫동안 이 나라는 독재와 내전으로 신음한다. 독립전쟁과 내전으로 죽은 사람만 전 국민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나라 형편이 피기 시작한 것은 제1차 대전 중 유전이 발견되면서부터다. 현재까지 세계 석유 매장량 1위인 이곳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오면서 1930년대 이곳 1인당 GDP는 남미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손쉽게 땅을 파면 밥이 나오는 경제구조는 장기적으로 다른 산업의 발달을 저해, 온 국민이 오로지 석유에만 의존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이 터지면서 다른 나라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베네수엘라는 보기 드문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유가가 폭락하자 경제는 엉망이 되고 정치 불안은 심화됐다. 오죽하면 두 번이나 쿠데타를 시도했다 실패하고 감옥에 간 우고 차베스가 99년 합법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겠는가.

차베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국부인 볼리바 이름을 딴 ‘볼리바 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석유로 번 돈을 빈민들의 복지혜택 확충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향상됐고 빈부 격차는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차베스는 전 세계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전적으로 고유가에 의존한 모래성이었다. 2013년 그가 암으로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는 같은 정책을 이어가려 했으나 2014년 국제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에서 1년 반 만에 40달러로 폭락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복지정책을 집행할 예산이 고갈되자 마두로 정부는 돈을 찍어내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고 그 결과 연 130만%라는 살인적인 인플레가 발생했다. 마두로 집권 후 3,000만 베네수엘라 인구의 10%인 300만이 국외로 탈출했으며 지금 전 인구의 1/6이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하고 있다.

나라 형편이 이에 이르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임시 대통령임을 선포하고 군부에게 마두로 축출을 촉구하고 있으나 마두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잃은 마두로가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쿠바와 러시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뒷배를 믿는 군부가 움직이지 않자 과이도는 미군개입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내전이 불가피하고 누가 이겨도 베네수엘라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로지 석유에 의지해 퍼주기 선심 정책으로 망조가 든 베네수엘라는 두고두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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