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에 만연한 연령차별주의, 건강에도 악영향

2019-05-01 (수) 한국일보-New York Times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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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령 부정적 고정관념 노인 부상회복 더디고 치매위험 상대적 높아

▶ 젊은층과 교류와 교육 연구결과 “크게 개선” 편견 줄이기 진전 기대

지난해 중간선거 때의 일이다. 젊은이들의 투표율을 제고하기 위해 선거광고제작사는 노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고령자들은 이기적이고, 정신상태가 흐리멍덩하며, 미래에 도통 관심이 없다는 주장으로 젊은이들의 경각심을 자극해 투표장으로 끌어내려 했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제시해 의도된 목적을 달성하려는 연령차별주의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이처럼 미국에서도 연령차별이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나이에 근거한 취업차별이 만연된 상태고, 의료케어부문에도 편견이 끼어든 지 오래다. 노인들은 언론매체의 레이더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지난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인 연령차별의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법을 모색하기 위해 4개 팀을 구성, 관련 증거 수집과 평가, 주된 원인과 건강에 미치는 원인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WHO가 구성한 4개 팀 가운데 코넬대 연구진은 미국을 중심으로 취학 전 아동부터 젊은 성인에 이르기까지 연인원 6,124명을 대상으로 1970년대 이후 지난해 사이에 실시된 총 64건의 앤티-에이지즘 프로그램 연구 결과를 1년 6개월에 걸쳐 분석했다.


연구진은 분석대상인 노인차별을 개선하는 프로그램들 가운데 1/3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그룹사이의 접촉과 교류에 중점을 둔 세대간 프로그램으로 분류했다. 이론상 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들이었다.

또 다른 1/3은 노화에 대한 확실한 팩트만을 가르쳐 이와 관련한 고정관념과 근거 없는 믿음을 내몰기 위한 교육용 프로그램이었고, 나머지는 이들 두 프로그램을 한데 합친 내용이었다.

이들 중 한 프로그램은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이메일을 통해 나이든 성인들과 6주 동안 접촉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고안됐고, 정원 가꾸기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4학년생을 테네시 노인센터로 매주 두 번씩, 6주 동안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반면 4회로 짜여진 오스트레일리아 하이스쿨의 프로그램은 노화와 성인개발과 관련한 역할극과 게임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했던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노인들에 대한 태도검사(attitude test)를 실시한 결과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조그룹 구성원들보다 이들이 훨씬 높은 점수를 얻었으며, 노화 관련 지식을 묻는 테스트 점수도 월등히 높았다. 또한 교육과 세대간 교류를 한데 아우른 프로그램이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인 것으로 나타났다.

듀크대학이 작성한 보고서의 선임 저자인 노인병전문의 칼 필레머 박사는 “이번 조사를 통해 확실히 드러난 사실은 연령차별주의적 태도가 우리가 애초 생각했던 것처럼 완고하게 자리잡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그 정도는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예일 공중보건대학의 사회심리학자인 베카 레비는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그들의 건강과 기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WHO의 요청에 따라 연령차별과 노인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조사 결과를 집중적으로 분석중인 레비 박사는 이와 별도로 자신이 지난 20년간 진행해온 연구결과를 인용, “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고령자들이 부정적 고정관념을 받아들이는 노인들에 비해 부상에서 신속히 회복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한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노인들의 대다수는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을 하는 등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에 얽매인 노인들은 치매 위험 역시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레비 박사는 “TV와 소셜미디어는 물론 일상사를 통해 연령차별주의가 사회적으로 널리 용인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며 “심지어 3-4세 어린이들조차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아이들과 젊은 층의 그 같은 태도는 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쉽게 교정할 수 있다는 듀크대학의 연구결과는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핵심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코넬 그룹 연구진은 과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지원자들을 15주 동안 추적해 관찰하는데 그쳤다. 따라서 앞서 말한 프로그램들의 긍정적 효과가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고, 고령자들의 마음속에 내재화된 연령차별주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테이터도 거의 없는 상태다.

코넬대의 연구결과는 미국심리학저널에 이미 소개됐으나 나머지 팀의 보고서는 1년 이내에 유엔 보고서 형식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일보-New York Times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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