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신, 푸틴의 ‘北 체제보장’ 발언 주목… “워싱턴에 은근한 한방”

2019-04-25 (목)
작게 크게

▶ “푸틴에게 안보논의 ‘브로커 역할’ 기회줘”… “제재 등 대북압박 균열 가능성 주시”

▶ “김정은은 ‘외교 고립론’ 불식”…구체적 결과없어 ‘상징적 회담’ 평가도

외신, 푸틴의 ‘北 체제보장’ 발언 주목… “워싱턴에 은근한 한방”

[AP=연합뉴스]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북러정상회담과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체제보장' 발언에 일제히 주목하면서 북러간 밀착이 향후 비핵화 협상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전통의 우방이면서도 첫 만남을 가진 두 정상의 논의가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 대화에 어떤 파장을 던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북한은 자국 안보와 주권 유지를 위한 보장이 필요하다"며 체제보장을 비핵화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회견이 끝나자 AP 통신, 미국 CNBC와 CBS 방송 등은 이 발언을 북러 정상회담 소식에 관한 기사 제목으로 올리며 의미를 부여했다.

AFP 통신도 "푸틴은 평양이 안보와 주권 보장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면서 워싱턴이 북한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데 대해 은근히 한 방을 먹였다(took a veiled swipe)"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측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주목하는 매체가 많았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대화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한 대목이자, 푸틴 대통령이 '중재자'로서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뚜렷한 신호를 미국에 보냈다"라며 "핵 회담에서 역할을 하길 열망하는 러시아에 이번의 화려한 정상회담은 전 세계에 러시아의 정치적 지배력이 커지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핵 교착' 해결을 위해 푸틴의 도움을 구했다"며 "푸틴으로서는 김 위원장을 초대한 것이 주로 미국과 중국이 형성해온 안보 논의의 한 '플레이어'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AP 역시 "푸틴은 (북러정상회담) 논의 내용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유하겠다는 의사를 강조했다"며 "푸틴에게는 이날 회담이 잠재적인 브로커의 역할을 증대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CNBC는 김 위원장이 '러시아가 미국에 우리 입장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두고 "북미 사이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껄끄럽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날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문이나 선언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김 위원장으로서도 나쁜 결과는 아니라는 평이 우세하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늘 회담은 김 위원장이 국내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게 했으며, 자신의 정권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공영 BBC방송은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강력한 동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분석하면서 푸틴 대통령 역시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다소 소외됐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기를 희망해왔다고 전했다.

보수 일간 더타임스 역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푸틴 대통령이라는 또 다른 인물에게 구애하면서, 북한에는 다른 친구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만남을 통해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기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러한 북러 밀착이 대북 제제 균열을 초래, 비핵화 협상판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면서 미국의 지렛대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WP는 "러시아의 방향 전환을 우려하는 미 국무부는 지난주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를 러시아에 보내 완전한 비핵화 실현을 위한 압박 유지를 추진했다"면서 "미국이 경제 제재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여타 압박에 있어서 어떠한 잠재적 균열도 주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북한 경제를 돕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공개적으로 내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대화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상징적인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거나 대북제재를 완화할 구체적인 조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WSJ도 "김 위원장의 구애에도 크렘린궁의 지도자는 어떠한 의미 있는 원조를 들고나온 것 같지 않다"고 했다.

CNN방송도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지배력 강화 시도가 실제로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북한 전문가 발언을 소개했다.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비영리재단인 '플라우셰어스펀드'의 필립 윤 사무국장은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지렛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비핵화가 북러 정상회담 의제에서 높은 순위라는 것에 놀랐다"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