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술과 상업적가치가 공존할 길은

2019-04-19 (금) 안종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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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상업적가치가 공존할 길은

안종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

만화가는 21세기 최고의 종합예술가다.

만화가는 소설가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영화감독의 연출력을 갖춰야 하며 화가의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만화’가 ‘예술’로 대우받느냐를 생각한다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프랑스에서 만화가 이미 지난 1970년대 제9의 예술로 분류됐음에도, 국내에서 이미 2012년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이 공포·시행됐음에도 그렇다.


만화에 대한 저질 시비는 뿌리가 깊다.

마치 지금의 게임이 그렇듯 1960~1970년대 만화는 어린이들의 악, 청소년들의 마약과 같은 쾌락재로서 취급받았다. 만화는 툭하면 사회 풍기 정화의 명목으로 자랑스럽게 불태워지고는 했다.

디지털 만화 시장을 선도하는 웹툰의 위상에 힘입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만화는 상업적 가치만이 확장 해석되고 예술적 가능성은 저평가 받는 불운의 콘텐츠다.

하지만 지금처럼 만화의 예술성을 외면하고 상업적 가치만을 강조한다면 한국 만화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가장 싼 콘텐츠, 영화·드라마 시나리오의 대중성 검증용 콘텐츠로밖에 취급받을 수 없다. 한국 만화의 미래를 위한다면 만화의 예술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만화의 예술적 가능성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만화는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사랑받은 표현방식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적 표현방식을 극대화해 예술과 만화의 경계를 허물고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는 말을 남겼다.

또한 무라카미 다카시,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 많은 팝아트 작가들이 만화적인 표현방식을 차용해 작품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만화가 예술로서 꽃피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으로 예술성에 관한 탐구·실험정신이 강한 만화 작가들의 양성이다. 그리고 만화축제·만화전시 등에 대한 지원은 만화의 표현 영역 및 향유 문화의 확장을 이끌 뿐 아니라 만화의 예술적 가치가 상업적 가치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도와 이런 작가들이 시장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순환적 비즈니스모델 개발에 일조할 것이다.


또한 만화가와 다른 분야 창작자들과의 협업 활동 지원은 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작가 스스로의 도전과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대중문화사에 있어 만화는 탄생부터 인생의 진리와 삶의 해학을 품은 대중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소박한 예술이다.

한국 만화의 미적 표현과 감각의 진화를 지원해 예술의 영역에 가깝게 하는 것, 그리고 예술가들이 한국 만화의 유머와 시각적 표현을 차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럼으로써 ‘예술로 다가온 만화’와 ‘현대미술의 유머러스한 만화적 표현’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한국 만화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

<안종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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