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병원 무관심… 정신질환 내딸 죽음 내몰아”

2019-03-26 (화) 김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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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여대생 유가족 대형병원 문제점 고발

▶ 의사 만나는데 4~6주, 30분 진료 약 처방만

심한 정신질환을 앓던 10대 한인 여대생이 무서운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지난해 자살을 시도한 끝에 결국 숨진 사건이 주류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청소년 정신건강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유가족들은 이 학생이 정신과 의료 서비스 부실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살로 내몰렸다며 캘리포니아 내 정신질환 의료기관들의 서비스 미흡을 주장하고 나섰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북가주 샌타로사에 거주하던 선영(영어명 엘리자베스 브라운·당시 19세)으로, 그녀는 대학에서 우등생으로 영국 옥스포드대에 교환 학생으로 갔다가 정신질환이 심해져서 돌아온 뒤 지난해 1월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한 뒤 그 후유증으로 결국 4개월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선영 양의 스토리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보도돼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다.

어머니 정성연씨는 본보와 통화에서 “딸 선영이가 매사추세츠 시몬스락의 바드 칼리지에 다니던 2016년 5월 첫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며 “그해 여름방학에 집으로 돌아와 카이저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자살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정씨는 “첫 방문 이후 다음 방문까지 4~6주가 걸리는 등 의사를 만나기 어려웠다”며 “옥스포드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출국이 예정돼 있던 딸은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유학길에 올랐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정씨는 “딘스 리스트(dean’s list)에 오를 정도로 우등생이었던 딸은 가라테 블랙벨트 유단자이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한 다재다능한 아이였다”며 “비영리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봉사하면서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을 돕고, 자신도 병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어머니 정씨는 그는 “영국에서 증상이 심해진 딸은 한 학기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며 “그러나 병원 측은 선영이 케이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의료 기록에 따르면 2017년 12월 선영씨를 담당한 의사는 “할 이야기가 많다”고 보낸 그녀의 메세지에 “방문은 30분으로 제한돼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치료약을 재처방해주는 것뿐”이라는 답변만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담당의사는 환자에게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치료 횟수가 너무 적어 결국 세션당 160달러하는 외부 치료사와 1주일에 1~2회 치료상담을 진행했다”며 “선영이가 2017년 1월 자살소동을 벌여 카이저 집중 외래환자 프로그램에 들어갔지만 치료 효과가 없었고, 또 다시 조울증 진단을 받은 후 두 차례 입원과 경계선 성격장애 진단 등 상태가 심해져 작년 1월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정씨는 “그 일로 뇌가 손상된 선영이는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그해 5월 병원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정씨는 “매달 보험료를 납부했는데 의사를 한번 만나려면 4~6주가 걸렸다”면서 “암환자에게도 이렇게 대하겠느냐”고 부실한 정신질환 의료체계를 비난했다. 그는 “암세포가 전이되면 죽음을 맞듯 정신질환이 악화되면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로 내몰린다”면서 “사회의 올바른 인식과 자살시도예방 의료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주 내 정신질환 의료기관은 타 질병과 달리 의료서비스가 미흡해 논란이 돼왔다. 가주헬스케어파운데이션과 카이저패밀리파운데이션이 지난 1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중 50% 이상이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현재 정씨 부부는 비영리단체인 ‘엘리자베스 모건 브라운 메모리얼 펀드’를 운영하며 딸처럼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지원하고 정신질환 의료체계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김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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