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요코 오노, 전위예술가

2019-03-26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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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LA 다운타운의 하우저 & 워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애니 라이보비츠 사진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진은 존 레논과 요코 오노가 침대에 누워서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다. 전라의 레논이 옷을 입은 요코에게 아기처럼 매달려서 키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기이한데, 이 사진을 촬영한지 5시간 후 레논이 총에 맞아 죽음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1980년 12월8일 ‘롤링스톤’ 잡지의 사진작가였던 라이보비츠가 찍은 이 사진은 이듬해 1월호 커버에 실렸고, 2005년 미국잡지편집인학회는 이 사진을 40년간 발행된 매거진 커버 가운데 최우수작품으로 선정했다.

지난 22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요코 오노의 음악과 작품을 조명하는 공연 ‘숨쉬고보고듣고만지기’(BreatheWatchListenTouch)가 열렸다. LA 필하모닉이 100주년을 맞아 이번 시즌 내내 펼치고 있는 ‘플럭서스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젊은 여성 공연예술가 75명이 오노의 예술세계와 작품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공연이었다.(플럭서스는 1960년대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으로 요코 오노, 존 케이지, 백남준, 라 몬테 영 등이 주도했다)


오노는 행위예술가, 전위예술가, 개념미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레논과 함께 음악활동을 하고 앨범도 냈으며, 그 자신의 솔로 음반을 15개나 발매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팝 뮤지션이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그가 작사 작곡한 다양한 노래들의 연주도 있었지만 전위 댄스와 퍼포먼스, 그녀가 쓴 메시지들의 낭독, 관객 모두가 벽을 향해 소리 지르거나 옆 사람과 터치하기 등 별스런 행위예술에의 참여도 요구되었다.

놀라운 것은 디즈니홀 전체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열광이었다. 비틀스 세대의 청중은 찾아볼 수 없었고, 힙하게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소리 지르고 박수치고 발을 구르는 등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공연이었다. 레논의 사후에 태어난 세대, 이들에겐 요코 오노가 ‘마녀’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으로 전위적인 삶을 살며 예술계를 선도한 영웅적 인물이었다.

요코 오노만큼 오랫동안 세계인의 증오를 한 몸에 받은 여성도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이 당돌하고 저돌적인 자그마한 일본 여성이 존 레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폴 매카트니와의 사이를 벌려놓아 비틀스를 해체시킨 장본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비틀스는 오노와 레논이 결혼하기 이전부터 멤버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돼 분열 조짐을 보였고, 매카트니 자신도 2012년 인터뷰에서 오노는 비틀스 해체에 책임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노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이미지는 40년전 레논이 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60여년간 예술가로 활동해왔지만 그가 어떤 예술을 하는지 어떤 작품이 있는지 그의 활동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오로지 ‘레논의 두 번째 아내였으며 비틀스를 분열시킨 악녀’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형화돼있는 것이다.

예술가 오노가 다양한 미디엄을 통해 표현해온 것은 성과 성차별, 인간의 고뇌와 고통, 사회적 연대와 사랑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가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2015년 가을 뉴욕에 갔을 때 모마(MoMA)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코 오노 회고전(Yoko Ono: One Woman Show, 1960- 1971)을 본 적이 있다. 비교적 초기의 개념미술 작품들이 전시돼있었는데 5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 현대성에 놀라게 되는 인상적인 전시였다.

존 레논은 요코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요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알지만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레논은 자신의 프로필을 ‘1940년 10월9일 출생 1966년 오노 요코를 만남’이라는 단 한 줄로 표현했을 정도로 그녀와의 만남을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 여겼다. 일부 평론가들도 레논의 음악세계는 오노와 만난 이후 새로워지고 진보했다고 말한 바 있다.

공연은 오노와 레논이 함께 쓴 유명한 노래 ‘이매진’을 청중이 다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휠체어를 타고 온 86세의 요코 오노가 모자를 쓴 채 객석에 앉아있었다. 평생 악녀 취급을 받아온 그가 새 세대 젊은이들로부터 가슴 벅찬 헌사와 공연을 헌정 받는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요코 오노를 좋아하지도, 변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느슨한 사실이나 편견 혹은 가십에 의해 형성된 대중적 이미지가 한 사람의 예술을 평생 덮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무섭고도 부당하게 느껴진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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