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충하초

2019-03-26 (화)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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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파식적 萬波息笛

1992년 일본 히로시마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마군단(魔軍團)으로 불렀던 중국 육상선수들이 매일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을 싹쓸이했다.

그러자 각국 선수단 등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성적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의문을 나타냈다. 불법 약물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해답은 대회가 끝난 후 중국 육상감독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선수들이 동충하초(冬蟲夏草)로 만든 음료를 복용했다는 것. 이는 동충하초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

동충하초는 거미·매미·벌 등 곤충의 사체에 기생하는 희귀버섯이다. 겨울에는 벌레이던 것이 여름에는 풀(버섯)로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신장질환·성기능장애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수천 종류가 나오지만 원래 주산지는 중국이다.


북서부 칭하이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의 쓰촨·윈난·간쑤성과 티베트 등에서 나는 동충하초가 유명하다. 특히 해발 3,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초원에서 나오는 박쥐나방동충하초는 정력·강장효과가 탁월해 ‘히말라야 비아그라’로 불린다.

이렇게 몸에 좋은 약제를 힘 있고 돈 가진 사람들이 가만둘 리 없다. 중국의 권력자·부호들에게 동충하초는 부와 정력의 상징이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요즘은 홍콩 부호들도 많이 찾는데 현재 시세가 g당 370홍콩달러로 330홍콩달러인 금값 이상이다. 히말라야 비아그라 등 최고급품은 1,000홍콩달러를 호가한다고 한다. 한화로 치면 약 15만원이니 10g만 하더라도 150만원이 넘는 셈이다.

비싸고 귀하다 보니 동충하초는 오래전부터 은밀한 거래의 대상이 돼왔다. 2015년 검거된 광둥성 고위 관료의 집에서는 뇌물로 받은 동충하초 200㎏이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동충하초를 뇌물로 주고받는 관료·기업인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중국 최고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특별단속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공금 횡령 사례까지 발생하자 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한동안 검거 광풍이 불겠지만 그렇다고 발본색원은 힘들지 싶다. 정력이 세지고 불로장생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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