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헤이세이(平成)

2019-03-22 (금) 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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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올림픽 성공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은 사회 곳곳에서 군국주의 부활 목소리가 고개를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 출범한 우익단체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다. 일본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모체가 된 이 모임은 2차 대전 패전 후 근거가 사라진 연호(年號)를 부활시키기 위해 연호 법제화 운동을 벌였다. 2차 대전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의 즉위 50년을 맞아 1976년 연호법 제정의 군불을 때기 시작해 1979년 입법에 성공했다.

연호란 새 왕이 등극한 후 나라를 다스린 햇수를 헤아리기 위해 붙인 칭호다. 기원전 140년 중국의 한무제가 사용한 건원(建元)이 시초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391년부터 사용한 영락(永樂)이 문헌상 첫 연호다. 대한제국에서 고종황제가 개국(開國), 건양(建陽), 광무(光武)를 사용했고 순종 황제는 융희(隆熙)라는 연호를 썼다.

일본은 고토쿠(孝德)왕이 즉위한 서기 645년 시작된 다이카(大化)가 첫 연호다. 현재 쓰고 있는 일본 연호 헤이세이(平成)는 247번째 연호다. 히로히토 이후 아키히토 일왕이 1989년 1월 즉위하면서 ‘평화를 이룬다’는 뜻의 헤이세이를 사용했으므로 올해는 헤이세이 31년이다.


연호는 일본 각종 공공기관의 공문서와 모든 출판물에 공식 표기된다. 학생증에도 연호를 새긴다. 과거 일본 연호는 일왕 스스로 정했지만 연호법 제정 이후에는 내각 각료회의에서 결정한다. 사실상 총리가 새 국왕의 연호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은 올 5월1일 아키히토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를 4월1일 발표할 예정이다.

평화를 내세웠지만 아키히토 헤이세이 31년은 2차 대전이 발발한 히로히토 쇼와(昭和)시대 못지않은 격동기였다.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불황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옴 진리교 테러 사건 등 재난이 적지 않았다. 일본 연호는 지금까지는 중국 고전에서 발췌한 한자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아베 내각은 일본 고전에 등장하는 글자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쟁 가능한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총리는 그 명분이 될 만한 연호로 새 일왕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2차 대전에 대한 뚜렷한 반성 없이 군국주의 회귀의 꿈을 꾸는 아베 내각에 과연 역사의식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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