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이체방크

2019-03-21 (목) 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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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국제 금융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다.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최대주주에 중국의 무명 항공사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당시 인수합병(M&A)의 신흥 강자인 하이항그룹이었다.

하이항은 도이체방크의 주식 9.9%를 확보해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5.88%)을 제치고 최대주주 자리를 꿰찼다. 유럽으로서는 중국에 대주주 자리를 넘겨준 것이어서 자존심이 크게 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막대한 소송과 벌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도이체방크는 하이항의 장기 투자를 적극 환영한다며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도이체방크는 1870년 외환거래 전문은행으로 설립된 이래 아시아와 미주대륙 등에 활발히 진출해 글로벌 금융계의 원조로 불리는 투자은행이다. 설립 2년 만에 녹차 무역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진출했고 1873년에는 런던에도 지점을 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의 북태평양 철도사업과 바그다드 철도사업에 투자하는 등 독일 자본의 해외 진출을 앞장서 거들고 나섰다. 설립 초기부터 세계 외환중개 시장을 장악하며 외환 딜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잘 나가던 도이체방크에도 나치 시절은 뚜렷한 흑역사로 남아 있다. 히틀러 집권 시절 게슈타포의 자금을 운영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짓는 자금을 제공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1999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52억달러를 내놓아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도이체방크가 10개의 지방은행으로 공중분해된 것도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1957년 재합병을 통해 프랑크푸르트에 본부를 둔 도이체방크로 재탄생해 한때 세계 최대은행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도이체방크가 독일의 2대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을 위한 공식적인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두 은행이 합병에 성공할 경우 자산규모만 1조8,000억유로에 달해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은행과 맞먹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경영난으로 구조조정 한파에 시달리고 있는 두 은행의 합병작업은 정부 차원에서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마불사’ 공식마저 흔들리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 은행권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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