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령유일주의 내폭(內爆)만이…

2019-03-1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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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알았다, 김정은 비핵화 의지 없다는 것을”- 벌써 두 주가 지났나.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이 시점에서야 트럼프 대통령은 비로소 김정은의 의향을 명확히 알게 됐다는 국내 언론보도 기사 제목이다.

‘왜 비핵화 의지가 없나’- 많은 분석이 잇달면서 새삼 드러나고 있는 것은 변형 스탈린주의라고 할까, 현대판 신정(神政)주의라고 할까. 그 북한의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속성이다.

“오늘의 북한은 베트남보다는 냉전시절 동독과 더 흡사하다.” 텍사스 알링턴 대학의 토머스 애덤 교수의 지적으로 김정은의 북한체제는 그 속성상 개혁을, 더 나가 경제적 번영 자체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동독 경제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괄목할 성장세를 보였다. 그 성장세가 둔화되자 동독 공산당은 중앙통제 완화 등 개혁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경제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70년대 들어 그러나 공산당국은 갑자기 개혁을 중단시켰다. 왜.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표방과 함께 동독의 이웃 체코슬로바키아는 개혁을 단행했다. 경제, 정치의 자유화 실험에 돌입한 것. 이와 함께 만개한 것이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이다. 그러자 소련은 탱크를 앞세워 침공했다. 자유화 바람 확산을 우려해 서둘러 막은 것이다.

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동독은 서독과 점차 비슷해져 갔다. 이는 ‘프라하의 봄’에서 보듯이 공산당 체제의 이완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 공산정권은 개혁을 중단시킨 것이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경제다. 계획경제가 그것으로 일부 공산국가들은 그 계획경제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접목시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중국, 베트남에서 보듯이.

냉전시대의 동독과 오늘의 북한은 이 공산국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애덤 교수의 지적이다. 같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체제의 대안, 다시 말해 계획경제체제로 세워진 나라가 동독이고 북한이다. 그러니까 계획경제는 동독, 북한이란 체제의 거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그 계획경제 체제가 고유의 색깔을 버리고 자본주의 형제국가와 비슷한 경제를 추구한다. 그러면 바로 자본주의 형제국가에 흡수되고 만다는 것이 포스트공산주의 시대 역사의 교훈이다.

비핵화를 받아들이고 대대적 개혁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한다. 그 경우 바로 찾아드는 것은 동독스타일의 북한체제의 실존적 위기다. 그 체제의 존재 이유가 바로 상실된다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그러니까 역동적인 자본주의 경제보다는 폐쇄적인 수령유일주의에 주저앉아 핵위협을 통한 권력유지가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김정은 체제유지의 주요정책은 식량을 무기화한 기아 게임이다. 이 정책을 통해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급급하도록 인민을 길들인다. 배고픈 그들은 체제에 순응할 뿐 더 나은 미래는 물론, 혁명 따위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왜 김정은은 비핵화에 관심이 없나. 그에 대한 북한문제 전문가 도널드 커크의 진단이다. 그러니까 북한의 해변을 콘도가 밀집한 리조트 단지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트럼프의 제의는 김정은에게 당초부터 잠꼬대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킨 전례가 없다. ‘과거 고난의 행군’에서 굶어 죽은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 그리고 현재도 1,100여 만에 이르는 영양실조 상태의 북한주민들은 바로 이 같이 목적을 띈 ‘식량을 무기로 한 기아정책’의 희생자라는 것.

그런 김정은 체제가 인도적 차원에서 경제제재 조치를 풀어달라고 주장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북한은 그러면 핵 포기를 통한 개혁개방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그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NK뉴스의 효도르 테리티츠스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 주장에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쿠데타 등 정변이나 돌연사를 통해 김정은이 무대에서 사라진 후’ 라는.

전체주의체제는 독재자가 죽었다고 바로 붕괴되지는 않는다. 권력투쟁이 뒤따르고 새로운 권력자는 권좌를 확고히 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한다. 후계구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은 사후 최고 권력은 비‘백두혈통’에게 넘어갈 공산이 크다.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 권력자는 개혁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개혁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그 자금을 확보하는 길은 핵을 포기하는 방안밖에는 없다. 때문에 ‘새로운 체제’에 확실한 보장이 주어진다면 비‘백두혈통’의 북한의 새로운 권력자는 대대적 경제지원을 대가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핵 포기는 선대, 김일성, 정일에 대한 배반이다. 그리고 그나마 권좌를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핵이다. 때문에 전면 핵 포기와 대대적 경제개혁의 ‘빅 딜’은 김정은에게는 그러니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 분석이 어쩐지 그렇다. 뭔가를 암시하는 것 같다.

외교의 창은 닫혀가고 있다. 하노이회담이 결된 이후 강(强) 대 강(强), 또 다시 ‘화염과 분노’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전쟁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로버트 카플란 등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전망이기도 하다,) 그러면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

그 희생을 극소화하는 방안은 뭘까. 레짐 체인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그러니까 수명을 다한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내폭(implosion)유도가 아닐까. 김정은이 무대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걸 은연 중 암시하는 것으로 들리는 것이다.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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