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노이회담, 복기(復棋) 끝의 결론은…

2019-03-1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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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리 위성발사장 복구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곧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잇단다. 동시에 북한당국의 대남, 대미 수사도 점차 거칠어져 간다.

한 주 남짓 지났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많이 보아왔던, 아주 ‘친숙한 광경’이 또 다시 전개되고 있다. ‘평양은 왜 미사일을 만지작거리나. 차후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온갖 분석이 분분한 가운데 워싱턴과 김정은의 다음 한 수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복기(復棋)도 계속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왜 ‘노 딜’로 하노이회담은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결론의 하나는 김정은은 태생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제안한 ‘윈-윈(win-win)‘지향의 북한 경제 ’대박‘론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거다.


2,500여만 북한주민의 경제적 번영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다. 결코 원하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이 오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자신과 김씨 왕조의 생존이다. 그런 면에서 현상(status quo) 유지가 김정은 체제로서는 최선일 수도 있다는 것이 후버연구소가 내린 결론이다.

그러니까 북한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트럼프의 제안은 그 발상부터가 현실적 근거가 부족한 정책상 오류였다는 거다.(이 점을 알면서도 일종의 독이 든 사과를 제시했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 베트남을 회담장소로 선택한 것도 그렇다. 경제발전과 독재권력 유지,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거였다는 것. 마약, 위조 미 달러화 밀매 등 추잡한 짓을 않고도 김정은과 이너서클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워싱턴의 제의를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외국자본이 계속 들어온다. 동시에 활발한 인적교류도 이루어지면서 북한경제는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자본과 정보의 대대적 유입, 더 더욱이 남쪽 대한민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함께 한류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상황에서 준 신정(神政)체제인 김정은 정권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답은 ‘노’로 기울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후버 인스티튜트의 결론이다. 개방노선 속에 숨겨진 위험성을 김정은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고 할까. 때문에 70년 이상 체제를 유지시켜준 ‘수령유일주의의 틀’ 고수만이 살 길이라는 자각(?)과 함께 김정은은 트럼프의 제안을 거부해 하노이 회담은 결렬됐다는 것.

“하노이회담 결과가 분명히 알려준 중요한 사실은 북한 비핵화를 향한 현 김정은 체제와 미국의 궤적은 결코 접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뒤집어 말하면 외교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 그 ‘기회의 창’은 닫혀가고 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관련해 새삼 떠올려지는 것이 있다. 1년 전의 시점에 현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한 말이다. 핵무장 북한에 대한 선제군사공격을 주장하던 그가 트럼프의 미-북 정상회담 안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폭스방송과의 대담에서 볼턴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 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회담을 통해 김정은의 진짜 얼굴이 조속히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핵 완성을 위해 시간벌이나 하자는 사기꾼에 불과한 그의 진면목이.”


그의 주장은 1년이 지난 후,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함께 결국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1년 전 시점에는 야인이었다. 그런 볼턴이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서 하노이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면에 부상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북한 핵 폐기와 관련해 강경발언을 쏟아낸다.

“똑같은 조랑말을 또 다시 사지 않을 것이다.” 볼턴이 한 말이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속지도 휘둘리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

정황이 정황이서인가. 이 타이밍에 김정은 체제 레짐 체인지를 강력히 시사하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 리얼 디펜스 밀리터리에 실린 찰스 드조우 전 연방하원의원의 에세이가 그것이다. 요지는 김정은 보다는 북한 군부지도자들과의 ‘은밀한 대화’를 통해 김정은 체제 붕괴를 유도하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주민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이 아사하든 말든. 당(?)과 정(政), 그리고 특히 군(軍) 간부의 ‘안녕’에는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체제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온갖 특혜를 통해 이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낸다. 그런 군 간부들도 심각한 경제난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북한의 현 상황을 이용해 김정은 제거에 나서라는 것이다.

한 논객의 주장에 불과하다. 황당한 논리로도 들린다. 그렇지만 외교를 통한 북한 핵 해결 기회의 창이 닫혀가고 있다. 이런 정황인 만치 그 주장이 뭔가의 시그널일 수도 있다면 지나친 관측일까.

그 관측은 그렇다고 치고, 김정은 못지않게 난처한 입장에 몰리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그 책임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호주의 싱크 탱크 인터프리트의 분석이 그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낙관적 기대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 김정은의 상황 오판을 불러와 결국 회담결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인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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