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 많이 주무세요”

2019-03-02 (토)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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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곰 세 마리가 벨뷰 주택가를 활보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땅속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우리 세속 경칩(5일)을 미국의 곰들도 알아서 지키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반대다. 하필이면 해가 눈에 띄게 길어지고 만물이 봄기운을 맞아 기지개를 켜는 경칩절기가 미국에선 ‘더 많이 잠자기’ 캠페인 주간(3월 3~10일)으로 정해져 있다.

통상적으로 건강한 성인들은 매일 밤 7~8시간을 숙면한다. 하지만 미국인 3명 중 한명은 삶의 불안, 걱정, 스트레스에 눌려 6시간도 못 잔다. 매년 6,000여만명이 고질적 불면증에 걸린다. 수면 중 호흡곤란(apnea)을 겪는 사람도 8,000여만명을 헤아린다. 방광, 요도, 전립선 등의 질환이나 노쇠현상으로 화장실 출입이 잦아 잠을 설치는 노인도 부지기수다.

의사들이 권장하는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하루의 3분의1)이다. 간난 아기(0~3개월)는 거의 하루 종일(14~17시간) 잠자지만 성장하면서 줄어들어 유치원 시절엔 10~13 시간, 초중등학생 때는 9~11시간, 고교생 때는 8~10시간으로 짧아지고, 성인이 된 18세부터 64세까지 인생 황금기엔 7~9시간으로 고정됐다가 은퇴(65세) 후 7~8시간으로 더 줄어든다.


잠으로 잃는 시간이 아깝다며 밤늦도록 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잠이 부족하면 오히려 수명이 단축된다. 2016년의 한 조사보고서는 수면시간이 6시간 이하인 사람들은 7~9시간대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13% 높다고 밝혔다. 100세 이상 노인 2,800명을 조사한 다른 보고서는 이들 중 과반수가 충분한 숙면을 장수요인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자는 동안엔 전체 몸 기능이 정지돼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자는 시간에도 몸은 나름대로 바쁘다. 스스로 알아서 몸의 독소를 제거하고 망가진 부위를 수리한다. 혈압을 낮춰 심장의 부담을 줄여준다. 피 속의 염증 요소를 줄여 각종 혈관질환과 암을 비롯해 당뇨, 비만 등 신진대사 관련 질환도 억제해준다. 이들 모두 수명을 단축시키는 성인병들이다.

놀랍게도 숙면은 알츠하이머병까지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다. 뉴욕 로체스터대학 연구팀의 보고서(2014년)는 잠자는 동안 뇌가 중요한 기억을 확실히 저장시키고 덜 중요한 기억을 삭제해주는 등 쓰레기와 독소들을 스스로 청소한다고 밝히고 잠을 덜 자면 이런 청소작업이 원만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알츠하이머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주중 5일간 일이 바빠 못 잔 잠을 주말 이틀간 늘어지게 자면서 보충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 잠은 어느 날 집중적으로 하거나 띄엄띄엄 할 일이 아니라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야한다. 콜로라도대학의 최근 연구보고서는 잠을 덜 자는 사람들은 정크푸드 간식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어서 뚱뚱해지며 당뇨에 걸릴 소지도 높아진다고 밝혔다.

낮잠이 능률을 높이고 건강에도 좋다는 말은 정설이다. 지난 2016년 노인 3,000명의 인식력을 테스트한 결과 하루 한 시간가량 낮잠 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점수가 크게 높았다. 세계적 장수촌인 그리스 이카리아 섬의 주민들은 낮잠 자는 게 일과다.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미국 스키선수 미카엘라 쉬프린은 경주 사이사이에 낮잠을 즐겼다.

나도 낮잠이라면 자신 있다. 점심식사 후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다. 옛말로 식곤증이다. 소파에 앉아서 깜빡 졸다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쏟뜨렸다. 교회 예배시간이 오후여서 설교 듣다가 졸기 일쑤다. 퇴근길에 프리웨이에서 내려 거의 눈이 감긴 채 운전하면서 인터체인지를 한 바퀴 돈 후 다시 프리웨이로 올라가 회사 쪽으로 향한 적도 있다.

미국인들이 이번 주 경칩절기에 벌이는 캠페인은 정확하게 ‘전국 수면 중요성 인식 주간’이다. ‘잠부터 자자’가 슬로건이다. 건강이유 못지않게 교통안전에 역점을 뒀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하루 1,500여명에 이른다. 전체 교통사고의 10%가 졸음운전 탓이다. 잠을 덜 자면 수명이 짧아진다는 위의 연구보고서는 이래저래 맞는 말이다.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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