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란 회교혁명 40년, 그 끝은…

2019-02-1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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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은 약속을 했다. 소수파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것이 그 하나다. 민주주의를 약속했고, 또 여성 동등권을 지킬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발언에 서방의 지식인들은 열광했다.”

그는 다름 아닌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이란의 팔레비 왕정이 회교혁명으로 붕괴되기 직전 프랑스 망명시절 그의 언동이다. 서방의 지식인들만이 아니다. 이란 내 자유진보세력, 심지어 공산주의자들도 매료됐다.

호메이니는 사실에 있어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거짓말을 한 거다. (그 호메이니의 언동을 회교혁명세력은 거짓이 아니고 ‘편의상’ 한 발언이라고 주장한다.)


정권탈취에 성공하자 호메이니는 혁명 전의 공약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민주화 약속을 거부하면서 회교율령에 입각한 일종의 시아파 회교 신정체제 건설에 매진했다. 알코올도, 팝 뮤직도, 개를 데리고 공원을 산보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대신 간통죄 범죄자를 공개리에 태형과 돌로 쳐 죽이는 야만적인 법령 등이 포고됐다.

1998년에는 ‘국가의 적’이란 이름으로 4만여 명이 처형됐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1979년에서 2009년 사이 이란혁명정부는 최소한 860명의 언론인을 체포, 살해했다.

회교정권의 잔인한 손은 해외에도 뻗혀있다. 헤즈볼라 등을 통해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반체제인사, 언론인 등에 대한 암살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체제에서 처형된 동성애자는 5,000명이 넘는다.

‘어둠이 지배한 40년이다’- 이란 회교혁명정부 4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가 내린 평가다. ‘이란은 새로운 혁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주장이다. 이 같은 미 언론들의 논평은 지나친 서구적 입장에서의 비판이 아닐까. ‘딴은…’이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제국주의의 간섭에서 벗어난 제 3세계 최초의 토착 혁명이다. 그런 면에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917년 볼셰비키혁명에 비견될 수 있다.” “호메이니 혁명은 회교권의 대각성과 함께 중동의 힘의 균형을 바꾸었다.”

이란 회교혁명에 대해 그동안 내려진 긍정적 평가다. 그러니 호메이니 혁명 40년 세월을 ‘기나긴 페르시아의 밤’이란 식으로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하는 반론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혁명은 정적(靜的) 현상이 아니다. 동적(動的) 실재다. 그 혁명의 리더십이 사유화될 때 큰 저항에 부딪힌다. 혁명이 요구하는 것, 그 목표를 배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현재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다.

뭐라고 할까.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독재자를 쫓아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후 대다수의 이란 국민은 더 사악한 또 다른 독재 권력이 그 자리를 슬며시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고 할까. ‘어둠이 지배한 40년’이란 평가는 이런 면에서 무리가 아니다.


회교혁명 40년을 맞이한 이란의 오늘의 상황이 그렇다. 어딘가 대실패로 끝난 베네수엘라의 좌파 사회주의혁명 20년과 몹시 닮았다. 한 마디로 ‘실패한 혁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창대했다. 우고 차베스가 이끈 베네수엘라나, 호메이니가 앞장선 이란 회교혁명 모두 가. 전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혁명주도세력은 그러나 곧 국민을 배반했다. 배반 정도가 아니다. 돈과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마피아 국가로 전락시켰다.

마두로와 그 추종세력이 국고를 털어 착복한 돈은 3,500여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 회교정권의 뮬라(mullahs)들과 이슬람혁명 수비군이 빼돌린 비자금도 수천 억 달러 수준이다. 거기다가 두 체제 모두 부정선거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민심은 흩어졌다. 시작은 지극히 창대했으나 그 끝이 몹시 불안한 것이 두 체제가 맞이한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80%는 차베스의 후계자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연일 반정부 시위에 나서고 있다. 마두로 체제는 붕괴직전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란 회교정권이 보다 본격적인 국민저항에 부딪힌 것은 2009년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치른 직후다.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의 주요 도시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것. ‘그린 무브먼트’로 불린 이 국민저항운동의 주력은 도시 지식인과 대학생 그룹. 그러나 무자비한 진압과 함께 회교혁명정권은 계속 유지돼왔다.

2017년 말 또 다시 대대적 시위가 발생했다. 그 시위는 지난해 여름까지 계속됐다. 그 주도세력은 하류 및 중하류계급 출신의 지방주민들. 이 시위에 회교 혁명정권은 ‘화들짝’ 놀랐다.

호메이니 혁명의 주축세력이다. 그리고 지난 40년간 줄곧 회교정권에 충성을 보여 왔다. 그 계층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 베네수엘라에서 전통적 마두로 지지세력인 저소득층이 반정부 시위에 나선 것과 흡사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 구호도 과거와 다르다. ‘팔레스타인 타도’, ‘시리아 철수, 우리를 생각하라’ 등이 이들이 내건 구호였던 것, ‘경제적 곤경 등 모든 문제는 사탄 미국 탓이다’ - 이 같은 논리와 함께 회교 혁명정부가 항상 내걸어온 구호는 ‘미 제국주의 타도’였다. 그 구호가 안 먹히고 있는 것.

‘시시각각 붕괴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마두로 체제. 그 베네수엘라 사태를 초조히 주시하고 있다’- 뉴욕포스트지가 전하는 호메이니 혁명 40주년을 맞은 이란 회교정권의 모습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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