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세보다 5배 빨라… 맥박 등 생체시계 느려져

2019-02-15 (금) 고광본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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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먹을수록 시간 쏜살처럼 흘러, 행복 느낄때 나오는 호르몬 도파민

▶ 20세 정점… 10년마다 5~10%↓, 일상 단순화도‘시간 가속’원인

10세보다 5배 빨라… 맥박 등 생체시계 느려져

젊은 세대보다 맥박 등 생체시계가 느려지며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듯하다.

“떡국을 먹었으니 다 같이 한 살 더 먹었네. 근데 각자 느끼는 시간은 어떤지 마음속으로 3분씩 헤아려 볼까요.” 올해 설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기 전에 가족 모두 눈을 감고 시간을 재봤다. 그 결과 10대인 두 딸은 2분50초, 50세 안팎인 우리 부부는 3분30초, 팔순인 어머니는 4분20초 정도 됐을 때 각각 3분이라고 답했다.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1분20초가 더 지나서야 3분이라고 여긴 것은 노인일수록 시간이 휙 간다고 절감한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시간이 금방금방 간다”고 말씀하신다. 중년 역시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 반면 10대는 오히려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실제 시간이 더 길다고 생각한다. 지난 1995년 미국 심리학자인 피터 망간의 실험에서도 9~24세, 45~50세, 60~70세군은 각각 3분3초, 3분6초, 3분40초가 됐을 때 3분 버튼을 눌렀다.

‘세월이 쏜살같다’는 속담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듯하다. 야구로 치면 10대는 시속 10㎞, 20대 시속 20㎞에서 50대는 시속 50㎞, 70대는 시속 70㎞로 빨라지는 식이다. 10대는 어른이 돼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데 비해 어른은 시간을 붙잡지 못해 노심초사한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공부 좀 하라”고 독촉하다가 갈등이 생기는 것도 서로 체감시간이 다른 것도 한 원인이다.

같은 시간인데도 이렇게 서로 다르게 느끼는 수수께끼는 무엇 때문일까.


프랑스 소르본대 철학 교수 등을 지낸 폴 자네(1823~1899)는 “1년을 10세는 10분의1, 50세는 50분의1, 70세는 70분의1로 느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자각한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시간수축 효과(Time-Compression Effect)’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호흡·혈압·맥박·체온·세포분열·신진대사 등 생체시계가 느려지고 행동이 둔해지는 것과 관련이 깊다.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강물을 시간에 비유하면 청소년은 더 빨리 강둑을 달린다. 중년이 되면 속도가 느려지고 노년은 강물보다 훨씬 뒤처진다”고 밝혔다.

특히 행복감과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20세에 최고를 기록하다가 10년 주기로 5~10%씩 줄어드는 것도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흔히 어려서는 조그만 일에도 깔깔대지만 나이가 들수록 웬만큼 특이한 것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다우베 드라이스마 네덜란드 그로닝겐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1년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라는 책에서 시간수축 현상의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망원경처럼 과거의 일이 확대돼 시간 거리가 축소되면서 최근 일로 기억한다(망원경 효과).

갈수록 기억의 지표로 사용할 만한 경험이 줄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회사를 다니며 일상이 반복되는 30~40대의 기억이 단순화되는 식이다(회상 효과).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이 줄어 생체시계가 느려진다(생체시계 효과). 한문으로 ‘광음여시(光陰如矢)’, 영어로 ‘타임 플라이스 라이크 언 애로(Time files like an arrow)’도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체감시간을 늦추는 방법은 뭘까.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과 추억을 많이 쌓고 기억할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첫사랑, 첫 월급, 첫 도전처럼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5박 6일짜리 해외출장에서 귀국해 공항에서 가방을 기다릴 때 문득 ‘열흘에서 보름은 다녀온 것 같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신세계를 한참 돌아다닌 결과 뇌 속에 많은 기억이 쌓여 체감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어려서는 정보나 새로운 것도 많이 접하고 기억력도 좋아 시간이 더디 간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청소년이 재미있는 책을 보거나 모바일게임을 할 때 당장은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나 실상은 흥미 있는 기억이 뇌에 남아 이후 긴 시간으로 느끼게 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해서도 시간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다. 특수상대성이론(1905년)에서는 어떤 물체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면 시간은 느려지고 길이는 수축되며 질량은 늘어난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로켓을 타고 시간을 측정하면 육지에서보다 더디게 가는 식이다. KTX를 타고 갈 때 옆 도로의 자동차가 느리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역동적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1916년)에서는 중력이 강한 곳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 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빠(쿠퍼)가 빛도 빨아들일 정도로 중력이 어마어마한 블랙홀을 거쳐 지구로 귀환하니 이미 딸(머피)이 할머니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빛처럼 열심히 활동하거나 강한 중력처럼 열정을 발휘한다면 체감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이다.

<고광본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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