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심을 잡아라’ 질레트 vs 쉬크의 면도기 전쟁

2019-02-15 (금)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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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안전면도기’ ‘최초의 전기면도기’ 혁신 기술로 시장 양분

▶ 5중날 신기술까지‘날 전쟁’에다 독자적 마케팅으로 아성 쌓아와

‘남심을 잡아라’ 질레트 vs 쉬크의 면도기 전쟁

질레트와 쉬크는 미국과 전 세계 면도기 시장을 양분해왔으나 최근 새로운 도전자들을 맞고 있다. <쉬크 코리아 페이스북 캡처>

일반 성인 남성이 면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나? 평생 무려 3,000시간이나 소비한다. 날짜로 따지면 140일, 횟수로는 2만번이 넘는다. 그렇다 보니 면도기는 남성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시장은 질레트와 쉬크가 각각 1, 2위로 양분하고 있다.

질레트와 쉬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이 결합해 거대 기업을 탄생시킨 좋은 사례이다. 1885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킹 캠프 질레트(King C. Gillette)는 아침마다 수염을 깔끔하게 깎아야 했다. 당시 수염을 깎을 수 있는 도구는 날카로운 칼밖에 없었고 얼굴에 상처가 남기 일쑤였다. 불평을 해대던 질레트는 이발사가 빗을 대고 머리카락만 잘라내는 모습을 떠올렸다. 여기에 착안해 칼날을 얇은 철판 사이에 끼워서 털만 닿게 한 상태에서 면도를 할 수 있는 ‘안전면도기’가 탄생했다. 질레트 신화의 시작이다.

쉬크의 성장 스토리는 전기면도기에서 출발했다. 쉬크의 창업자 제이콥 쉬크(Jacob Schick)는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물로 면도하다 불현듯 전기면도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때문에 쉬크는 전기면도기의 발명자로 불린다. 전기면도기 회사 창업 이후 습식면도기 시장에도 뛰어들면서 질레트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두 회사는 주고받거니 경쟁을 벌이면서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시장을 선점한 쪽은 질레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에 면도기를 납품하며 인지도를 쌓았고, 군인들은 전역 후 질레트의 ‘충성 고객’이 됐다. 두 번째 도약의 계기는 연구개발비만 총 7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3중날 면도기 ‘마하3’를 내놓으면서부터다. 마하3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억개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쉬크도 면도날 혁신 경쟁에서 질 수 없었다. 최초의 4중날 면도기 ‘콰트로’를 출시했다. 혁신적인 피부 밀착과 면도의 안정성을 자랑하며 쉬크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충격을 받은 질레트는 2007년 최초의 5중날 진동면도기 ‘퓨전’을 내놓으며 소위 대박을 친다. 쉬크는 이에 질세라 피부자극을 줄여주는 보습기능에 ‘올인’하게 된다. 다중 날 경쟁에서 밀리자 사업 전략을 바꿔 면도 시 촉감과 저자극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두 회사의 경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판이하게 다른 마케팅 전략이다. 질레트는 오랜 시간 데이비드 베컴과 리오넬 메시 등 유명 스포츠 스타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을 고수해왔다. 한국의 손흥민 선수도 모델로 활동 중이다. 반면 쉬크는 광고 모델보다 면도기 자체 기능을 내세우고 있다. 보습력을 강조해 파도나 물방울의 모습을 극대화한 그림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그동안 숱한 위기에도 자신만의 전략으로 시장을 양분해 온 질레트와 쉬크. 변변한 경쟁자도 없다 보니 매년 고가의 모델을 새로 출시해 가격을 올리는 프리미엄 전략을 고집해왔다.

하지만 2011년 ‘면도기 구독 모델’이라는 기존 시장에 없던, 생각지도 못했던 도전자가 등장했다. 바로 “요즘 면도기는 너무 비싸다”는 슬로건을 내 건 면도날 배달 서비스 업체인 ‘달러 쉐이브 클럽’과 ‘해리스(Harry’s)’이다.

마이클 더빈 달러 쉐이브 클럽 대표는 “2주에 한 번 면도날을 바꿔야 하는 교체형 면도기에 진동 핸들과 플래시, 6중날과 같은 것들이 왜 필요한가”라며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달러 쉐이브 클럽은 매달 월정액을 내면 첫 배송 때 면도기 핸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이후에는 면도날만 매달 4~5개 보내준다. 질레트 등에 비해 60% 정도나 싼 가격이다.

이들 스타트업들은 홍보 방식도 전통적인 강자들을 압도했다. 비싼 광고 모델을 등장시키고, 화려한 영상기술을 쓰는 대신 SNS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홍보했다. 달러 쉐이브 클럽은 단순하고 코믹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단 48시간 만에 2만1,000명의 고객들이 늘었다.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맞춰 최고의 광고 효과를 올린 셈이다.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달러 쉐이브 클럽과 해리스의 미국 남성 면도기 시장 점유율은 2015년 7.2%에서 2017년 12.1%로 올랐다. 같은 기간 질레트 점유율은 60%에서 50%로 빠졌다. 결국 질레트와 쉬크는 백기를 들었다. 가격을 인하하며 프리미엄 전략을 포기하게 된다. 또 질레트는 달러 쉐이브 클럽의 방식을 모방해 배송 서비스도 시작했다.

면도기 시장의 두 공룡이 신생 스타트업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브랜드 전략과 기술력만 강조하며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스타트업 기업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꿰뚫어 봤다. 새 면도날을 마트에 가는 수고로움 없이 집에서 싼 가격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매력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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