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파 속에 봄날을 생각하며

2019-02-07 (목)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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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에 봄날을 생각하며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북풍 한파가 북미대륙을 몰아치고 있다. 절기상 가장 춥다는 소한과 대한이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북극한파가 북미 대륙을 동토의 대륙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온 세상이 얼어붙고 있어서 큰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이제 곧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가 이렇듯 사회의 이치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반이민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고 이민자들이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이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인 17세기 약 17만5,000명의 영국인들이 이민하였고 이들과 함께 서유럽에서 대거 미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식민지가 만들어지고 19세기 중반부에는 주로 북유럽에서 이민을 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남유럽, 동유럽 출신들이 대거 들어왔다.

그러나 중남미와 아시아의 이민은 1964년 흑인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민권법의 영향으로 1965년 새로운 이민법이 만들어지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중남미와 아시아계는 가장 늦은 후발 이민자들이고 가장 젊은 이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늘 그렇듯이 먼저 자리를 잡은 집단은 후발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을 했고, 때마다 반이민 정책을 취하고 지금보다 더 험악하게 이민자들을 추방하였다.


특히 20세기 초반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유럽인들이 몰려 들어왔고, 1910년에는 이민자 인구가 1,300만을 넘겼다. 그러자 1924년 개정 이민법을 만들어 남유럽과 동유럽 이민자들, 특히 유대인, 이탈리안, 그리고 슬라브 민족들의 수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왜냐 하면 미국은 서유럽인들의 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법으로 2차 대전이 끝나고도 이들 지역의 유럽 난민들은 미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멕시코 불법이민이 증가하자 미국은 1957년까지 100만명이 넘는 멕시코인들을 추방했다. 그리고 1965년 비유럽 국가 이민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아시안과 중남미 이민자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이민법이 통과 되면서 미국은 다시 이민을 대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같은 유럽계 이민자이지만 앞선 이민자 집단들은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미국으로 들어온 아일랜드인들을 ‘White nigger’라 부르면서 게으르고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로 매도하면서 차별을 하였다. 물론 종교적으로 가톨릭을 믿던 아일랜드계 이민자에 대한 반감은 앵글로색슨 출신의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상당했다.

그러나 아일랜드계는 생계를 위해서 경찰과 군인, 소방관으로 자리를 잡고 존 F 케네디가 미국 최초의 아일랜드계 대통령 되면서 그 지위가 급격히 상승했다. 물론 이들도 남유럽출신의 이탈리안에 대한 차별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계와 거의 비슷하게 미국으로 온 유대인들도 차별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신세였고 오늘날 한인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야채, 네일, 세탁과 같은 업종에서 하루하루 일을 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하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대인 커뮤니티를 건설하였다.

누구에게나 오르막이 있고 또 내리막이 있다. 바닥에서 시작한 후발 이민자로서 미주 한인들도 이제 미국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커뮤니티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의 반이민 광풍은 분명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올 봄과 여름을 위해서 당당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 시작이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라는 것을 명심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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