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실패국가 베네수엘라, 결국은…

2019-01-2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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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주목해야할 세계 10대 분쟁’- 포린 폴리시지 특집기사 제목이다. ‘2019년의 5대 안보 전망’ ‘2019년의 최대 안보위협과 그 분석’-. 리얼 클리어 디펜스, 또 로이터 통신 등 주요언론들이 내놓은 2019년의 세계 안보 전망 특집기사 제목들이다.

내용이 저마다 다르다. 무엇이, 어떤 세력이 미국에, 더 나가 국제사회의 최대 안보위협인지 그 우선순위 배열도 서로 다르다. 종합해보면 그러나 한 가지 큰 그림이 떠오른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회교 수니파 극렬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 등 국제 테러단체가 최대 안보위협 세력의 하나로 꼽혔다. 더 이상 아니다. 이들 테러세력은 세계안보위협의 상수(常數)역할에서 변수(變數)의 위치로 밀려난 것이다. 대신 세계 안보위협의 최대 상수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4개 나라다. 북한, 이란, 중국, 러시아.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대만해협, 남중국해, 호르무즈 해협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지역 등이 분쟁 발생가능 최대 위험지역이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는 이 네 나라 외에 또 다른 나라를 그 후보군에 올려놓았다. 어느 나라일까.

‘사람이 먼저다(La gente es lo primero)‘-. 우고 차베스가 던진 화두다. 그 구호에 매료됐다. 베네수엘라 국민만이 아니다. 진보이념을 표방하는 서방의 좌파인사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차베스는 진보진영으로부터 ’남미의 해방자‘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사람이 먼저다’는 촛불정권의 구호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좌파 사회주의 실험은 차베스에서 그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로 권력이 이어지면서 20년 만에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경제는 거덜 났다. ‘사람이 먼저다’란 구호 아래 반 기업,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했다. 퍼주기에만 일관한 결과 한 때 남미의 경제우등생이었던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발전의 동력이 완전히 꺼졌다. ‘다 함께 잘사는 나라’가 아닌 극소수 정권담당 세력을 제외하고는 ‘다 못 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빈곤, 영양부족 상태가 만연돼있다. 굶주림으로 성인들의 체중이 평균 20파운드 이상 줄었다. 인플레이션은 해마다 가속이 붙어 2019년에는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기능이 마비됐다. 사회제도도 무너졌다. 공교육마저 중단지경에 이른 것이다. 더욱 문제를 심각하게 하는 것은 마두로 체제의 베네수엘라가 마피아 국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두로와 그 추종세력이 주요 국가기관을 모두 장악하면서 베네수엘라는 금융범죄, 돈세탁, 마약, 인신매매의 허브가 되고 만 것이다.

하루하루 연명조자 힘들다. 그래서 전체 3,100여 만의 국민 중 10% 정도인 300여만이 해외로 탈출했다. 그 숫자는 2019년에 530여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조되고 있는 것은 시리아 난민사태의 확대판이라고 할까, 그런 초대형 난민위기 발생 우려다.


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두로는 카스트로 숭배자로 구시대적인 좌파혁명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웃나라 콜롬비아의 반정부 공산당 게릴라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멘토’격인 쿠바 공산정권의 지도편달 하에.

그 마두로 체제가 최근 들어 괴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에 바짝 접근했다. 베이징 방문에 나섰던 것.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자본의 베네수엘라 투자유치가 우선의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알파도 있어 보인다. 중국과의 안보관계 강화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분석이다.

그 다음 이루어진 것이 러시아 방문이다. 마두로는 푸틴으로부터 60억 달러규모의 투자약속을 얻어냈다. 그리고 며칠 후 지난 연말에는 핵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장거리 전략폭격기 2대가 베네수엘라 수도 인근에 전개된 사실이 확인됐다.

괴이한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해군이 이웃 가이아나의 전관수역에서 엑슨-모빌사 시추선의 해저석유 탐사작업을 저지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이웃 소국 가이아나의 국경분쟁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지금의 시점일까.

경제가 엉망이다. 사회적 불만은 임계점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그런 정황에서 트럼프 미행정부와 남미의 우파정부 지도자들의 협공을 받아 사면초가에 빠졌다. 뭔가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외부에서 일을 저질러 내셔널리즘에 불을 지르는 거다. 독재체제, 포퓰리즘에 기댄 권위주의형 체제가 흔히 쓰는 수법이다.

‘…그래서 사전에 정지작업을 한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과의 잇단 만남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워싱턴 일각에서의 시각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군사개입은 금물이다. 미국의 안보외교계의 상식이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에 대해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러니 쓸데없이 반미감정 악화만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렇지만 열강이, 그것도 미국에 적대적인 중국이, 러시아가 마피아 국가를 암암리에 지원한다. 중남미 지역에 교두보를 설치하려 드는 것이다. 이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으로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 그러니.

빈곤도 모자라 전쟁이란 대참사를 불러오고 말 것인가. 좌파실험에 실패한 베네수엘라가 결국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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