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레비 분수

2019-01-18 (금)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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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이탈리아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에서 네덜란드 여성과 미국 여성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두 여성은 셀카 장소를 두고 옥신각신 말싸움을 하더니 갑자기 머리채를 붙잡고 싸웠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 수백명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서로의 뺨을 때리고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급기야 가족들까지 합세해 모두 8명이 뒤엉킨 집단 난투극으로 번졌다가 현지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중단됐다.


트레비 분수가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다보니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일어난다. 2001년 기자가 트레비 분수를 찾았을 때도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선점하려는 관광객들의 신경전을 경험한 적이 있다.

트레비 분수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 때로 전해진다. 교황의 지시를 받은 로마 건축가 니콜라 살비가 바다의 신 등 그리스신화 속 인물들을 형상화한 바로크양식의 건축물을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1762년.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로마에서 22㎞ 떨어진 살로네 샘에서 오는데 수로를 통해 운반된다고 한다.

아름다운 건축양식과 함께 트레비 분수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동전 던지기다. 분수를 뒤로 한 채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에 따라 동전을 던지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광경은 1954년 미국 영화 ‘애천(愛泉·Three coins in the fountain)’에서 로마에 온 세 여인이 동전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 뒤 유행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장면은 트레비 분수의 명성을 더욱 부채질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동전을 던지다 보니 트레비 분수 바닥에는 세계의 동전이 매일 수북이 쌓인다. 하루에 4,000유로(약 515만원), 연간 150만유로(약 20억원)에 이를 정도다.
그동안 이 돈은 가톨릭 자선단체에 기부돼 노숙자와 저소득층 가정에 지원돼왔는데 4월부터는 로마시가 예산으로 귀속시킨다고 한다.

20조원에 육박하는 부채에 시달리는 로마시가 이 동전을 사회복지 프로그램 예산 등으로 쓴다는 소식이다. 교회 측의 반발에도 시 의회마저 승인한 상태여서 되돌리기 힘든 모양이다. 관광지 동전 수입에까지 눈독을 들이는 로마시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씁쓸하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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