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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방문한 ‘한국 손님’들의 ‘갑질’ 백태

2019-01-16 (수)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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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방 업그레이드 요구·팁 문화는 아예 무시·여자 있는 술집 요구도

버지니아의 한 유명 호텔에서 근무했던 Y씨. 1.5세인 그는 몇 해 전 이 호텔에 묵었던 한국 손님을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떨떠름하다. “객실 담당 직원한테 연락이 왔어요. 한국 손님 한 분이 객실을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해달라고 요구한다는 겁니다. 마치 내가 누구인데 몰라보고 업그레이드도 알아서 안 해주냐는 식이었데요. 그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담당 직원이 물었어요. 저는 잘 모르는 분이었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그 손님은 한국에서 이름난 목사였다. Y씨는 “점잖게 생기신 초로의 신사였어요. 한국에서는 알아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지 모르지만 미국에 와서 어떻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됐어요. 한인으로서 동료직원들 보기에 창피해 혼났어요.”


경북 예천군 의회 박종철 의원의 여행 가이드 폭행사건<본보 1월 7-8일 A1면 보도>이 공분을 일으키는 가운데 워싱턴을 방문했던 상류층 한국 인사들의 ‘갑질’ 행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여행·호텔·요식업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앞서의 유명 목사처럼 미국에 와서도 당연한 듯 무리한 요구나 꼴불견 짓을 해대는 일이 적지 않다.
모 식당의 B씨는 두해 전 벌어진 한국 손님의 ‘작은 소동’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워싱턴을 방문한 고위 공무원이 이 식당을 찾았다. 식사를 한 후 계산을 하는데 팁을 내지 않는 것이었다.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설명을 해드렸는데도 아예 무시를 하고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에 오시면 미국 문화와 관습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러니 ‘네 까짓 게 뭔데 날 가르치려드느냐’며 막 화를 내세요. 파견 나와 있던 직원들이 상급자의 유세 부리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대미외교의 기지인 주미한국 대사관에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찾아온다. 대사관 직원들이 고위급 한국 손님들의 비위를 잘못 맞췄다가는 곤경에 처하곤 한다.

한 여성 국회의원의 갑질 일화는 아직도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로 거슬러간다. 그 여당 국회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를 만난 대사관의 정부 부처 파견 공무원은 대뜸 혼부터 났다.
“그것도 하나 해결 못하느냐.” 그가 화를 낸 것은 “미쉘 리 워싱턴 교육감과 면담약속을 잡아 달라”는 그의 ‘오더’가 먹혀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의원실에서 연락이 온 건 워싱턴을 방문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미쉘 리 교육감은 당시 대대적 구조조정과 교육개혁으로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그 담당관은 부랴부랴 워싱턴DC 교육감실에 요청했지만 미국 공직 시스템 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급한 면담 요청은 당연히 불발됐다. ‘무능한’ 공무원으로 찍힌 그 담당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당당한 의원님은 요즘도 미디어에 매일 같이 화사하게 등장한다.

여행업계는 가장 가까이에서 한국 손님들을 상대하는 직종이다. 따라서 가이드들만큼 한국 손님들의 속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 없다. 가이드들에 따르면 한국 손님들과의 마찰의 가장 큰 이유는 ‘여자’와 ‘행세’다.

10년 가까운 경력의 A씨는 “미국에 와서도 꼭 있는 티, 가진 티, 힘 있는 티를 내려는 손님들이 있다”며 “우리끼린 모르겠는데 미국인들 보는 데서는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이드 B씨는 “술을 마시면 여자 있는 데를 요구하는 분들이 계셔서 난처하다”며 “물론 도시에 따라 그런 술집도 있고 도우미도 있는 건 알지만 직업 윤리상 그런 곳으로 손님을 모시고 가지 않는데 그러면 융통성 없는 가이드로 찍혀 고생 좀 해야 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여행·호텔·요식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요즘은 한국 손님들의 갑질이나 꼴불견이 많이 줄었다. 해외여행이나 출장 경험이 많아지고 스마트폰 등 도처에 ‘감시자’들이 있기 때문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가이드 폭행사건의 박종철 의원처럼 저급한 돌출행위나 추태로 눈살을 찌푸리는 게 하는 행태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한 여행사 대표는 “세계 어딜 가나 해외방문시의 언행은 그 나라 민도의 척도”라며 “한국이 세계 1등 가로 인정받으려면 아직도 어깨에 힘을 주려는, 행세하려는, 부를 과시하려는 권위와 졸부의식을 버리고 민주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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