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웅의 이름으로’

2019-01-12 (토)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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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19년 3.1독립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정부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독립운동 테마 역사로 꾸몄고 서울시내 버스 정류장 10여곳을 선정하여 독립운동가 이름과 함께 역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한국 독립 영웅들은 김구, 유관순, 안중근, 서재필, 안창호, 윤봉길 등등이 우선적으로 거론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들이 살아있는 자 가까이 오는 느낌이다. 한국의 영웅들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나 대전 현충원 등에서나 만날 수 있지 우리가 사는 동네 가까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생활함으로써 ‘우리는 늘 당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복잡한 사거리나 도로 한복판에서 수시로 깨우치게 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반도 전역에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와 주세페 가리발디를 비롯한 독립의 영웅을 기리는 건축물이 무수하다.

서기 395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지 1,466년만인 1861년에 이탈리아 왕국이 건립되며 통일되었다. 토스카나인, 베네치아인, 제노바인, 시칠리아인 등이 모두 이탈리아인이 되기에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통일의 영웅 동상과 기념비, 통일을 위해 몸 바친 전사자 명단이 새겨진 시내 건물 벽, 레지스탕스 추념동판 등등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로마시내 한복판에 건설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1820~1878) 기념관의 규모는 엄청나다. 거대한 규모의 하얀색 석조 건물에 이탈리아 삼색 깃발이 날리며 에마누엘레 2세의 업적을 기리고 통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위한 영원의 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사는 미국도 그렇다. 워싱턴 D.C는 건국을 위해 몸 바친 영웅들에게 바치는 도시 같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부터 링컨의 거대한 석상까지 영웅들의 동상, 기념관, 기념비가 즐비하다. 미국의 독립 영웅은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미국 독립을 위해 몸 바쳐 헌신했던 이들은 각각 100달러 지폐와 1달러 지폐의 인물로 언제나 미 국민의 손에 들려있고 귀히 다뤄진다.

그런데 한국은 기존의 동상이나 기념비, 명패도 정권이 바뀌거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동상이 철거되고 이름을 딴 기념관이 폐쇄 위기에 처하거나 기념관 건립계획 자체가 무산되는 것이다.

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재미한인들에게는 안창호와 서재필의 이름이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서부 지역에 동상, 명명 도로, 기념관 등이 잘 되어 있다지만 필라델피아를 근거지로 한 서재필은 뉴욕과도 인연이 깊은데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서재필 박사는 1890년 6월10일 한인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받았으며 최초로 미국의대를 졸업한 의사다. 1919년 조선의 3.1만세운동을 전해들은 그는 이승만 등과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한 후 한국친우동맹을 결성하여 미국과 파리에 20개 이상의 지부를 개설하고 2만5,000명 회원들을 모았다.


1920년 3월1일에는 뉴욕지부 주최로 3.1절 기념행사를 뉴욕 시티홀에서 열어 1,000명의 미국인들이 한국 독립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3.1운동은 조선인들이 끊임없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며 독립의 당위성과 의지를 세계만방에 보여주었다.

한인밀집지역인 맨해튼 32가나 플러싱, 뉴저지 팰팍 등지에 서재필 의사를 기리는 표식이나 기념비가 아쉽다. 우리가 생활하는 거리 한복판이나 건물 어딘가에 새겨진 나라를 구한 큰 영웅의 이름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주체의식이고 자존심이다.

훗날 한반도 통일의 주역인 ‘영웅의 이름으로’ 누구의 동상이, 기념관이, 기념탑이 세워질런지 궁금하다. 그런데 왜 아득한 심정이 될까.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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