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몰려오는 먹구름

2019-01-02 (수)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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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미국 증시는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다 2009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처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가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당면한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투자가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는 지난 달 2009년 이후 9번째 금리를 인상했다. 금리상승은 기업과 가계 모두에게 금융비용 증가를 의미하며 이는 주가에 분명한 악재다. FRB는 내년에도 두 차례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금리상승은 주식에만 나쁜 것이 아니다. 모기지 부담을 늘려 주택 등 부동산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미 지난 11월 남가주 부동산 매매는 전년에 비해 12%나 하락했다. 가격 상승도 3.5%에 그쳐 수년래 최저다. 다수 의견은 지난 수년간 남가주 집값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올라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이지 2008년 때 같은 폭락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부동산 경기가 둔화세에 들어간 것만은 분명하다.


거기다 미국내 정치 상황도 좋지 않다. 트럼프 일가와 러시아와의 유착 관계를 조사해 온 특별검사는 곧 이와 관련한 보고서를 내놓을 전망이다. 민주당 장악 하에 있는 연방하원도 온갖 청문회와 자료 제출로 트럼프를 괴롭힐 것이 확실시 된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멕시코 국경 장벽건설 예산을 걸고 연방정부를 폐쇄했으나 이로 인해 여론을 돌려보려는 전략을 실패한 듯 보인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사상 최저수준인 39%로 떨어진 반면 반대는 56%에 달했다. 연방정부 폐쇄와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43%가 트럼프 책임이라고 답했으며 민주당 책임이라고 본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트럼프 지지율 하락은 주가하락과 북한 핵문제가 지지부진한 것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NBC 방송은 지난 주 북한이 핵실험을 중단하고 미사일 발사를 멈춘 이유는 트럼프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실험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갔으며 2020년까지 1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영구폐쇄한 것은 쇼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북한의 태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을 오가며 남북 화해와 한반도 비핵화를 외쳐오던 문재인 정부는 곤경에 처해 있다. 철석 같이 믿었던 김정은 연내 답방은 무산됐고 미 북한 간 대화도 교착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북한은 핵폐기 전제조건으로 한반도에서의 미 핵우산 철폐를 들고 나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본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자신들의 핵폐기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핵사용을 완전히 포기한 다음에나 고려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를 이보다 더 괴롭히는 것은 수년래 최악의 경제상황이다. 작년 한국 자영업자 폐업률은 88%로 전년에 비해 10% 포인트 상승했으며 사상 최악이다. 현실을 무시한 급속한 최저임금 상승이 주 원인이라는 점에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의 90%는 긍정적”이라느니 “물 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느니 등등의 현실과 동떨어진 문재인 발언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와 취업 준비생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취임 초 80%가 넘던 문재인 지지율은 40% 중반으로 추락했고 가장 강력한 문재인 지지자였던 20대 남성들은 가장 강력한 반대자로 돌아섰다.

거기다 “국내 문제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며 돌아선 모습이나 환경부 블랙리스트, 청와대 특별 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깨끗한 정부를 내세웠던 초기 문재인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연초에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희망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지금 한미 간 정치 경제 상황은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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