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 개혁개방 40돌… 문화혁명 폐허에서 GDP 155배↑

2018-12-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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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샤오핑에서 시진핑까지… 빈곤국에서 세계 2대 경제국 ‘우뚝’

▶ 미중 무역전쟁에 빈부격차 확대로 고민 커… 권위주의 회귀 우려

40년 전인 1978년 12월 18일,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 74세의 덩샤오핑(鄧小平)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역사에 거대한 전환을 가져온 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22일까지 열린 중국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과 개혁 지지 세력은 개혁개방 정책을 결정했다.


이후 40년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155배 성장했고 8억명이 넘는 사람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중국은 이제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 이벤트에 하루 35조원을 쓰는 나라가 됐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국인 중국은 몇 년 안에 고소득 국가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 덩샤오핑 점진적 개혁 "발 아래 돌 살피며 물 건너라"

40년 전의 11기 3중전회는 마오쩌둥 시대가 완전히 저물고 덩샤오핑이 대표하는 중국의 2세대 지도부가 전면에 등장한 자리였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1977년 복권된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사상해방'과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한다)를 강조한 유명한 연설로 중국의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이는 며칠 뒤의 3중전회의 발판이 됐다.

부총리였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 당 총서기의 '마오쩌둥이 결정한 것과 지시한 것은 모두 옳다'는 슬로건을 배격하고 개혁개방을 당의 기본 노선으로 채택했다. 덩샤오핑과 개혁 지지자들이 화 총서기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할 때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자 제조업 기반이 허약한 농업 국가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30년이 채 안 지났으며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이 초래한 정치적 혼란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이때 시작된 대내적 개혁과 대외적 개방은 문화대혁명의 폐허에서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었다.

중국은 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점진적으로 가격을 자유화했으며 사유 재산권을 강화했다.

증국은 1978년 농가 생산 책임제를 도입해 집단 경작체제를 가족 단위로 전환했다.

이전에는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1978년 이후 시장도 빠르게 늘어났다.

덩샤오핑은 11기 3중전회 1개월 후인 1979년 1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났다. 중국에서 공산당이 집권한 1949년 이후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간 것이다. 중국이 세계에서 고립된 나라에서 벗어나 서방에 문을 열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덩샤오핑은 1980년 광둥성의 선전을 비롯해 주하이, 산터우와 푸젠성 샤먼 등 4곳을 경제특구로 처음 지정했다. 대외무역 발전과 외자 유치를 위한 시범구였다.

중국은 이후 남부 지역 바닷가의 특구를 연해 지역까지 선으로 잇고 다시 이를 내륙으로 확장하는 '점-선-면 '전략을 실행했다.

상하이에는 푸둥신구도 설립됐다.

국가와 시장의 균형을 추구하는 가운데 개혁의 물결은 농촌에서 시작해 도시로까지 밀려왔다.

중국은 산업 발전을 위해 화교 자본을 포함한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했다.

농경 국가였던 중국은 농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공업 부문을 발전시켜 산업구조를 2·3차 산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개혁개방 정책은 1992년 덩샤오핑의 이른바 '남순강화'로 전기를 맞았다. 톈안먼(천안문) 사건 이후 개혁개방 정책의 동력이 약해지자 덩샤오핑은 35일간 중국 남부 주요 지역을 돌면서 시장 개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90년대에는 현대적인 세금 제도와 기업 개혁, 정책 은행과 상업 은행의 분리 등이 이뤄졌으며 금리 자유화도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대외 개방을 촉진했다. 중국을 세계 경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2004년 사유재산권 보호를 헌법에 명시한 것도 개혁개방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중국의 개혁은 점진적이었다. '물을 건널 때 발아래의 돌을 잘 살피면서 건너라'는 것이 덩샤오핑의 지침이었다.

대체로 일부 지역에서 실험적 개혁을 하고 성공하면 이를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전략이었다. 중앙의 정치적 지도 아래 지방 정부도 각각 개혁 실험을 펼쳐갔다.

점진적 개혁은 개혁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피하는 효과도 있었다.

◇ 8억여명이 빈곤 탈출…풍족해진 삶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가히 '중국의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중국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광둥성 선전은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될 때 인구 3만명의 어촌이었지만 이제 상주인구가 1천250만명이 넘는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다른 3개 도시와 함께 어엿한 중국의 1선도시가 됐다.

선전은 대부분의 중국인이 사용하는 메시지 앱 위챗(웨이신)을 만들어낸 텐센트와 세계적 통신장비업체이자 스마트폰 회사인 화웨이, 전기차 업체 BYD(비야디) 등을 낳았다.

선전은 이웃한 홍콩의 GDP를 이르면 올해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40년 전에는 보잘것없었지만, 지금은 '중국이 재채기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커졌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차지하는 비중은 1978년 1.8%에 불과했지만 2017년 18.2%로 높아졌다.

중국은 1978년부터 연평균 9.5%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1인당 GDP는 8천800달러로 약 155배 늘었으며 8억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1인당 가처분 소득은 40년 사이 약 23배 늘어났다.

전 세계 GDP에서 중국의 비중은 1978년 1.8%에서 2017년 15.2%로 늘어났다.

구매력을 고려하면 중국 경제 규모는 2014년에 이미 미국을 넘어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바 있다.

1990년 상하이와 선전에 증권거래소가 각각 생긴 이후 중국 본토의 상장회사 수는 1990년 10개에서 2017년에는 약 3천500개로 증가했다.

중국은 2009년 세계 경제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나라가 됐으며 2010년에는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됐다. 2011년에는 일본을 따돌리고 2위 경제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은 무역 규모와 외화보유액 등 여러 면에서 세계 정상으로 올라선 지 수년이 됐다.

무역 규모는 지난해 4조1천억 달러에 이르며, 외화보유액은 1978년 1억6천7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조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인의 삶도 풍족해졌다.

도시의 1인당 거주 면적은 지난 40년간 6.7㎥에서 36.9㎥로 늘어났다.

자전거 천국이던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 돼 100개 가구당 40대 넘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간 중국인은 1억3천만명에 이른다.

중국국제방송은 개혁개방 40년에 대한 평론에서 "세계 인구 20%를 점유하는 중국의 경제 성장 자체가 세계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1978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경제의 평균 성장률은 9.5%로 세계 1위였다"고 자찬했다.

이 방송은 "보호주의, 일방주의가 대두하는 상황에서 전세계 100여국의 최대 무역 동반자가 된 중국은 개혁개방의 길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개방형 세계 경제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 위태로운 개혁개방…무역전쟁 속 개방 확대할 듯

요즘 중국은 개혁개방 40주년을 자축하느라 떠들썩하다.

지난 14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등 중국 지도부 전체가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혁개방 40주년 경축 문예 공연 '우리의 40년'이 개최됐다.

이날 공연에는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뿐만 아니라 전인대 상무위원, 국무위원, 최고 인민법원장,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 3천여명이 참석해 개혁개방 40년의 성과를 회고하고 전진을 다짐했다.

공연 내용은 지난 40년간 거둔 변화를 음악과 무용, 연극 등으로 재현하면서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의 지도 아래 중국몽의 꿈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표현해 '시진핑 절대 권력'을 반영했다.

얼마 전부터 베이징의 국가박물관에서는 개혁개방 40년을 기념하는 대형 전시를 하고 있다.

관영 매체들은 연일 특집 기사로 그간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판공실은 개혁개방 40주년 다큐멘터리 '중국:변혁의 이야기'를 공동 제작해 발전하는 중국과 장밋빛 미래를 방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진핑 체제에서 과거의 권위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으며 민간기업 역할 축소론 등도 제기됐었다.

주요 경제 부문에서는 정부 개입이 지속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빈부 격차는 갈수록 커졌고 실업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과잉 설비 조정과 국유기업 개혁이 절실하지만, 대규모 실업이나 경제 둔화 리스크 때문에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렵다.

기업이나 지방 정부의 부채를 낮추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에 대응하느라 일단 이런 과제 해결은 뒷전으로 밀린 상황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환경 문제나 부패 등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취약 계층인 농민공이 3억명에 가까운 가운데 소득 불균형이 심각한 것은 사회 불안 요소이며 경제성장을 둔화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을 맞는 18일 오전 10시 인민대회당에서 중요 연설을 할 예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 주석이 이날 연설에서 대대적인 시장개방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큰 양보를 해야 하는데 나약하게 밀리는 모습으로 비치면 국내 정치에 악영향을 줄까 봐 우려한 나머지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개혁개방 정책의 심화에 따른 양보 조치로 선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 확대, 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서비스 분야 개방 확대 등의 원칙을 천명하고, 시장개방의 대상이 되는 업종과 구체적 개방 정책 등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에 주력하면서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실현, 2050년까지 '부강·민주·문명·조화'의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할 계획이지만 목표 달성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성장 구조 전환의 핵심으로 꼽혔던 '중국 제조 2025' 정책도 미국의 요구로 수정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 정책은 정보통신, 전자부품과 로봇산업 등을 육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하려는 핵심 정책이다.

10% 넘는 성장률을 자랑하던 중국은 이제 성장률이 6%대로 떨어졌으며 목표를 추가 하향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의 개혁개방 40년이 성공적인 것은 맞지만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 '중국 제조 2025'나 중국몽을 내세우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됐다"면서 "이제는 발전보다는 이룩한 것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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