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탈 코르셋 운동

2018-12-15 (토)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작게 크게
최근 뉴욕타임스가 ‘성형 천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을 집중 조명했다. ‘탈코르셋 운동’ 이란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corset:체형 보정 속옷)’을 결합한 말이다. 여성으로 상징되는 긴 머리, 메이크업, 하이힐 등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으로 줄여서 ‘탈코’ 라고도 한다.

코르셋은 원래 남성 군인들이 갑옷을 입을 때 허리를 보호하고 역삼각형 몸매를 만들기 위해 교정 목적으로 입었던 일종의 보정용 옷이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여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흘러간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침대 기둥을 잡은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의 코르셋을 흑인 유모(해티 맥대니얼 분, 최초의 흑인 오스카상 수상)가 “숨을 들이마시고 가만히 있어요” 하면서 기를 쓰고 조여서 개미허리를 만드는 장면이다. 이 장면 덕분에 젊은 여성 사이에 가는 허리 경쟁이 붙어서 당시 코르셋 업자들은 호황을 맞았다고 한다. 당시 미적 기준이 가는 허리다보니 드레스를 입을 때 코르셋을 해야 했고 호흡곤란으로 기절하거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여성도 있었다.

그런데 이 뜬금없는 코르셋이 유튜브에 등장했다. 미투 운동의 여파이기도 한 이 탈 코르셋 운동은 여성은 예뻐야한다는 가부장적 문화를 거부한다. 지난여름부터 한국의 탈코는 본격 전개됐는데 학생, 직장인들이 긴 머리를 숏 컷으로 자르거나 민낯 사진을 SNS에 올리고는 ‘# 탈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를 함께 단다.
뉴욕타임스 한국판 사진기자인 후배가 이 ‘탈 코르셋 운동’ 관련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동영상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는 자막이 나오고 배은정씨 얼굴이 보인다. 주위사람들의 말이 달려와 꽂힌다. 회사 편하게 다니네, 요즘 화장하는게 예의야, 여자 피부가 그게 뭐야? 비비라도 좀 발라라, 쌍수하면 예뻐지겠다, 파운데이션 먹방, 눈 뜬 거냐? 그런 말들과 함께 그녀는 화장을 시작한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 화장을 하고 입술을 바르고 볼터치를 한 다음 콘택트렌즈를 낀다. 다시 주위사람들의 말이 나온다. 얼굴이 너무 넙데데해, 남자들은 그런 화장 안 좋아해, 무슨 자신감이냐, 집밖에 나오지마, 쥐잡아먹은 줄 알겠네....그녀는 다시 렌즈를 빼고 립스틱을 지우고 눈화장을 지운다. 민낯이 된 그녀는 안경을 끼고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그 존재자체로 특별합니다. 남들로 인해 꾸며진 내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을 찾으세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민낯으로 돌아간 배은정씨, 화장한 얼굴은 예쁘지만 사납고 화려해보였는데 화장 안한 얼굴은 수수하고 착해 보인다. ‘남들 시선에서 벗어나라’는 이 동영상은 55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배은정의 유튜브 팔로우어는 14만7,000명이다. 그녀는 헤어스타일을 짧게 하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서 한 달에 옷값과 화장품 값 500달러를 절약했다고 한다.
미국에선 할리웃 유명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가수 마돈나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은 채 공식석상에 나타났었고 엠마 왓슨, 스칼렛 요한슨 등이 숏 컷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이 탈 코르셋 운동에 대한 관점은 여러 가지다. 적극 환영하는 자, 동참을 강요하는 자, 회의론자, 상관 말라는 자 등등. 그런데, 머리나 화장이나 옷차림이나 본인이 꾸미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시간 없고 귀찮으면 안하면 된다. 누구나 꾸미지 않을 자유, 꾸미고 싶은 자유가 골고루 있다.

탈 코르셋 운동의 한 가지 득이 있다면 여성 스스로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점일 것이다. 그래서 제발, 한국 드라마에서 남성이 여성을 백화점에 데리고 가 이 옷 저 옷 입혀보며 흐뭇해하는 장면이 더 이상 안 나오기 바란다. 옷은 자기가 입어서 마음에 들면 자기가 사는 것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