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주 소방관들, 역사적인 산불에 대해 이야기하다

2018-12-12 (수)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이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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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염에 휩싸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주 소방관들, 역사적인 산불에 대해 이야기하다

파라다이스 캠프파이어 산불로 한 주택이 불타고 있는 모습. [AP]

소방관들에게는 다른 모든 화재 사건을 다 제쳐두고 평생 기억에 남을 ‘커리어 파이어’(career fire)가 하나씩은 있다.

지난달 발생한 가주 ‘캠프파이어’ 산불 진화작업을 벌인 소방관들에게는 이 화재가 바로 그런 ‘커리어 파이어’다. 수천명의 구조대는 8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15만 에이커를 전소시킨 가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에 훌륭하게 맞섰다.

가주 밸리 스프링스의 소방관 크리스천 존슨(22)은 주택들이 불에 타는 것을 바라보며 “캡틴, 저 주택 살릴 수 있나요? 저 주택은요?”라고 질문할 때마다 캡틴은 “안돼, 이미 너무 늦었어”라는 대화만 오고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수백피트에 달하는 불길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화재를 뚫고 대피하는 주민들이 줄을 잇는 최전방 상황 속에서 영웅적인 행위와 공포, 비통함과 행운이 공존했다.

모든 비통한 죽음에는 순간적인 희망도 함께 존재했다. (존슨 소방관이 손을 쓸수 없는 주택 전소현장을 목격한 다음 날 그의 팀은 한 학교를 지켜냈다.)

산불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정리했다.

■ “전쟁만 아닐 뿐 교전지역이 따로 없었다” - 캡틴 제프 엣슨

산불이 시작된 뷰트 카운티 소속 파이어 캡틴 제프 엣슨은 산불이 시작된 그날 아침 가장 먼저 출동한 소방관 중 한명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파라다이스 동쪽에 위치한 콘코우로 달려가 장내 방송설비를 갖춘 트럭을 타고 타운을 돌아다니며 대피령을 내렸다.

그리고 막다른 길 호프만 로드를 향해 나아갔다.

“우리가 호프만 로드를 통해 반쯤 빠져나왔을 때 이미 심한 화상을 입은 여성 한명이 도로에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은 불길로 휩싸였고 우리가 트럭의 뒷문을 열자마자 그녀가 차에 올라탔다. 길을 따라 내려가보니 콘코우 호수의 초입 쯤에 다달아 작은 개울 하나가 보였고, 4명의 주민이 손을 흔들고 셔츠와 자켓으로 얼굴 등 호흡기를 보호한 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도로가 송전선과 쓰러진 나무로 인해 차단되어 빠져 나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캡틴 엣슨은 회상했다.


이미 심한 화상을 입은 주민들은 그 말을 전한 뒤 곧바로 개울에 몸을 던져 불길을 피했다. 캡틴 엣슨이 구조한 15명의 주민들 또한 주변의 불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시에 따라 개울에 자신들의 몸을 깊게 담궜다.

특수제작 불도저에 타고있던 소방관들은 라디오를 통해 여러 구조요청 소식들을 접했고 불타는 나무들과 송전선을 헤쳐가며 길을 뚫었다.

“우리 팀과 함께 있었던 몇몇 픽업트럭 중 일부는 이미 타이어와 트럭 베드에 불이 옮겨 붙은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 불 끌 시간조차 없으니 계속 운전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고 불도저가 먼저 길을 트면 7~8대의 픽업트럭이 뒤이어 화재 현장을 빠져나갔고, 나는 최후방을 엄호했다. 여러 화재현장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불이 붙은 채로 현장을 빠져나가는 차량에 탑승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캡틴 엣슨의 부모는 파라다이스에 거주한다. 그는 화재 당시 부모에게 대피할 것을 권했고 그 뒤 몇 시간 동안 화재에 맞서 싸우느라 부모가 안전히 대피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하루 뒤에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그의 부모 집은 전소된 뒤였다.

“전쟁만 아닐 뿐 교전지역이 따로 없었다. 끔찍한 참사라고 밖에 말할 길이 없다.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당신이 운이 좋았던, 타이밍이 좋았던 간에 화재로 인해 사망한 수십명 중 한 명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 “전투태세로 임했다” - 캡틴 조 차베즈

캡킨 조 차베즈는 가주 소방국 뷰트카운티 소속 소방관이자 파라다이스 주민이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그는 부인 및 세 자녀와 함께 집에 있었다.

“지난 22년간 그랬듯 나는 전투태세로 비처럼 퍼붓듯 맹렬했던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단 건물 안에서 대피해 산불이 지나가길 기다리자“라는 생각을 할때 아내는 ‘딸이 천식을 앓고 있고 우린 버틸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두뇌가 번뜩였다. 우린 반드시 탈출해야만 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차를 끌고 탈출하는 와중에 맹렬한 불길이 자동차를 덮치기도 했다.”

캡틴 차베즈는 타운에서 11마일 가량 떨어진 치코라는 곳에 가족을 무사히 대피시키고 그의 집과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파라다이스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보니 프로판 가스탱크와 가스선이 폭발하고 있었다. 마치 교전지역 같았고 밖에서 봤을 때 집의 모든 부분이 불타고 있었다. 화염에 휩싸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매우 슬픈 순간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해 ‘집이 모조리 불에 탔다’라는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두 마리의 강아지는 무사히 탈출했지만 고양이를 잃고 말았다. 가장 힘든 것은 평소 내것이라고 여겼던 것을 모조리 잃었을 때다.

결혼한 뒤 15년간 많은 추억을 함께 쌓은 공간이었는데 더 많은 추억을 누릴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집을 잃고 말았다.”

집을 떠난 뒤 캡틴 차베즈는 불길에 휩싸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의 픽업트럭으로 주민들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와 주민들이 불길을 빠져나오는 동안 그는 이미 구조에 늦은 불탄 시체들과 자동차들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캡틴 차베즈는 그날 이후로 아직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새로 살 집을 구하고 내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내가 한 때 살던 마을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가장 힘든 부분은 타인의 도움을 청해야하는 현실이 될 것 같다. 오랜시간 내가 타인에게 도움을 베풀어 왔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군가의 최악의 순간 내가 그의 도움이 되었다면 지금이 바로 내 인생 최악의 순간 중 하나다.”

■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결코 이런 것들을 목격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 캡틴 오쉬 아마드

프리몬트 출신 캡틴 오쉬 아마드는 연방도시수색구출팀의 가주 태스크포스 소속으로 화재진압 후 수습을 담당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업무를 해왔지만 사고 현장을 수습하면 할수록 슬프고 힘들다. 현장은 매우 참혹하다. ‘감히 표현할 수 없는’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이곳에 일어난 일들을 목격하고, 주민들이 겪었을 일들과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내려야했던 결정들을 생각할 때 매우 가슴이 아프다. 사랑하는 가족들, 반려동물, 그들의 재산, 집까지 단 5분 이내로 급박하게 결정해야했을 그 번뇌가 이곳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주택들은 재가 되어버렸고 자동차는 녹거나 탈출의 흔적이 남은 채로 도로에 널브러져 있다고 캡틴 아마드는 전했다. 그의 팀은 지금까지 2,200여채의 건물을 수색했으나 시신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대개 우리의 임무는 아직 생존해있거나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을 수색하고 구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의 경우 생각의 이면에는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수색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는 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유해라도 찾고자 하는 심정으로 수색에 임하고 있다.”

캡틴 아마드는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 또한 상당하다고 전한다.

일부 팀원들은 24시간 교대근무로 수색에 임하고 있는데 참혹한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강도 높은 노동의 현장보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훨씬 더 크게 고갈시킨다고 캡틴 아마드는 전했다.

“내 어깨에 짊어진 무게는 내가 부여받은 임무만큼 무겁고 내 마음에 짊어진 무게는 내가 목격한 사망자들만큼 무겁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결코 이러한 것들을 목격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무수행 중 절대 이런 참혹함을 목격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애석하게도 항상 사건은 발생하고 이렇게 사건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이는 고스란히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고통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이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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