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8년 세밑, 그 단상들…

2018-12-10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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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여름의 찬란한 합창 소리가. 그런데 남은 달력은 한 장이다. 12월이다. 세밑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두 손이 모두 마비되다시피 했다. 잘 걷지도 못한다. 그런 그가 워싱턴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 H. W. 부시. 정치적 라이벌이자 전우이고 오랜 친구다. 그 41대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그의 올해 나이는 95세. 밥 도울 전 연방 상원의원이다. 전우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그 모습은 전 미국에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미국의 2018년 12월의 첫 주는 지나갔다.


그 역시 같은 세대다. 휠체어를 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다. 백세를 눈앞에 둔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의 안보가 걱정돼 병든 노구를 이끌고 국민 대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언론은 아예 외면을 한 것이다.

그 가운데 거리마다 펄럭이는 것은 김정은 환영단 모집 플래카드다.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인사에 대한 공공연한 테러위협과 함께. 이렇게 대한민국의 2018년의 12월은 시작됐다.

20세기는 정치의 세기다. 진정한 의미의 20세기는 1917년에 시작돼 1991년에 끝났다. 이 75년의 기간은 한 스토리로 이어지다가 대단원을 맞는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이 그 것이다. 때문인지 많은 학자들은 20세기를 ‘정치의 세기’ 혹은 ‘전쟁의 세기’로 보고 있다.

그 한 세기의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난다. 파시스트와의 전쟁, 공산전체주의와의 전쟁을 미국은 모두 승리로 이끈 것이다. 그 전위역할을 담당한 것은 1901년~1924년에 태어난 세대다.

대공황을 겪으면서 성년을 맞는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선에 투입됐다. 그리고 전후에는 미국의 지도층이 돼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는 세계를 구했다.” 2001년 도울 전 상원의원이 의회에서 한 연설이다. 그 역시 2차 대전 상이용사이기도 한 ‘아메리칸 워리어(戰士)’로서의 프라이드가 그 한마디에 응축돼 있다.

월남전과 함께 이 세대는 시련기를 맞는다. 반전 무드 확산과 함께 미국사회는 거대한 가치관전쟁에 휩싸인다. 그러니까 자녀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의 반항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H. W. 부시의 1992년 대선패배는 그 결정판이다.

‘아메리칸 워리어’의 마지막 세대 대통령으로서 그는 냉전승리와 소련제국 해체를 이끌었다. 1차 걸프전도 혁혁한 승리로 매듭지었다. 그 부시가 베이비붐 세대 선두주자인 빌 클린턴에 패배, 단임 대통령으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무엇이 패배를 불러왔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슬로건 때문이었나. 아마도. 그러나 그보다는 한 시대 전부터 시작된 문화전쟁, 가치관전쟁에서의 패퇴가 더 근본적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월스트리트 저널이 뒤늦게 던진 질문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어른이 되면서 그러나 대반전이 일어난다. ‘아버지 세대의 피와 땀, 봉사와 헌신이 있었기에 전후 세대는 자유롭고 번영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대각성’이 그것이다. 한층 성숙해진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세대의 위대성을 새삼 발견한다. 그래서 부모 세대에게 바친 것은 그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세대’라는 헌사다.

‘가장 위대한 세대’의 마지막 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가는 날 미국의 전 세대는 자리를 함께 했다. 카터 전 대통령(94세) 등 ‘가장 위대한 세대’에서 클린턴, 트럼프 등 베이비 붐 세대 대통령에다가 밀레니엄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지적이다.

이들은 하나가 돼 용기, 헌신, 희생, 애국심, 패밀리 밸류(family value) 등 ‘가장 위대한 세대’의 덕목을 소중한 유산으로 기린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2018년 세밑 문턱의 풍경이다.

뭔가에 씌운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몰입’ 정도가. 모든 것이 ‘기-승-전-김정은 답방 환영’이다. 문재인 정부, 더 나가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김정은 환영에 있는 것 같다. 경제도 국기문란 문제도 내팽개쳤다. 오직 김정은인 것이다.

‘전 국민이 쌍수로 김정은을 환영할 것으로 믿는다’- 문 대통령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후죽순같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김정은 환영단체다. ‘공산당이 좋아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국영방송 공중파를 타면서까지. 뭐랄까 거침없이 좌 프레임 씌우기가 전개되고 있다고 할까.

적폐청산 이란 이름하에 모든 것이 부정된다.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류의 나라, 자유와 풍요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에는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 그리고 민주화 세대의 피와 땀과,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를 통째로 부정한다.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는 친일, 반민족이란 이름으로 부관참시(剖棺斬屍)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게다가 김정은 체제에 비판을 했다가는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외면당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다. 그 세대의 공로가 인정되기는커녕 극우세력으로 매도돼 없어져야 할 세대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것은 좌편향 일변도의 적폐청산이다. 노조가 나서서 기존의 안보 틀까지 해체하라는 식의. 그 광란의 칼날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옥상에서 뛰어 내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멀리서 바라보는 서울의 2018년 세밑. 그 풍경은 스산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대한민국은 형해(形骸)화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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